강의가 일찍 끝나서 기분 좋게 집으로 가던길
역 근처의 서점에 오랜만에 들러보았다.
올 초까지만 해도 한달에 두세번은 서점에 가곤 했는데
여름방학 때부터 인터넷 서점을 자주 이용하고 부터는 발길이 뚝 끊겼었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아니면 우연의 장난인지 아무튼 서점에 가게 되었다.
2층의 문학코너를 서성거리던 나는 주목을 확 끄는 책을 발견했다.
원래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이 소설을 살까하고 갔었다.
10월이면 영화로도 개봉한다는데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을 것같아서 였다.
내가 상당히 좋아하는 에쿠니 가오리씨의 새로운 책이 나온 것이다.
결국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를 집어들고는 집으로 향했다.
초판 1쇄의 펴낸날을 보니 내가 구입한 날의 바로 전날이었다.
일본에서는 1997년에 당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여성지에 연재된 결혼 생활에 관한 에세이이다.
이 책은16편의 각기 다른 제목을 가진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있다.
에쿠니 가오리씨의 소설 속의 주인공들처럼
그녀 자신도 도시의 주택가이면서 조금은 한적하고 주변에 공원이 있는 곳에 살고있다.
또 그녀도 역시나 목욕을 좋아하는 듯하다.
1964년 생으로 올해로 41세가 된 에쿠니 가오리씨가 결혼한지
2년이 되는 가을에서 3년이 되는 가을까지 쓴 에세이를 1997년에 출간한 것이라니
많이 잡아서 이 책이 결혼 후 한 4년쯤 되었을 때 나온 것이라 생각하면
30대 초반에 결혼한 것이니
에쿠니 가오리씨는 결혼을 비교적 늦게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생각이 참 Cool하다고 할까?
그녀의 소설속 주인공들처럼...
이 책 속의 글의 일부를 인용하면,
"인생이란 어디서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다. 언제 헤어지게
되더라도, 헤어진 후에 남편의 기억에 남아 있는 풍경 속의 내가
다소나마 좋은 인상이기를, 하고 생각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에쿠니 가오리씨가 참 Cool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그렇다. 인생이란 어디서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다.
아직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인생의 큰(혹은 작을 수도 있는) 일부인 결혼이라는 것도
역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그런 것이 아닐까하고 막연히 추측해 본다.
결혼이란 짧으면 1~2년, 길어야 내 삶의 마지막까지 뿐이 유지될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든다.
너무 가벼운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결혼을 하게된다면
에쿠니 가오리씨처럼 Cool하고 의외로 정다운 면도 있는(?) 여자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또 생각해 보면 나도, 그녀가 불평하는 그녀의 남편처럼, 만사를 귀찮아하고 게으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대부분의 남자가 역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런 생활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죽음이 우리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한 말로 맹세한 사랑이나
생활은 어디까지나 결과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목적은 아니라고 믿고,
찰나적이고 싶다. 늘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결정 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남편과 같이 있다. 그것이 전부다. 그리고 같이 있는
동안은 함께하는 생활을 마음껏 맛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헤어질 때가 오면 조금은 울지도 모르겠지만.
'죽음이 우리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한다면, 아마 더 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일부다.
결혼이란 정말 저런 면에서 매력이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멋지다. 왠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허전해 온다.
너무 일찍 환상(혹은 망상)을 깨버린 것일까?
역시나 그녀의 글엔 묘한 매력이 있다.
더욱이 솔직 담백한 에세이이기에 그 향기가 더 진하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본 그녀의 책들 중 최고라고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