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엘프 트릴로지 - 정착 (the Dark Elf Triology - Sojo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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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 트릴로지의 마지막 '정착(Sojourn)'.

드디어 '언더다크'를 벗어나 전혀 새로운 세계에서의 모험을 시작하는 드리즈트, 그의 선한 마음에서 시작된 행동은 오해와 탐욕으로 인해 그를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그의 선한 마음은 결국 선한 지상의 종족들에게 보여진다. 특히 드루이드 '몬톨리오'를 만나 사제의 정을 나누고 신의 선물과도 같은 '자연과의 교감 능력'을 깨우치는 모습은 방황하던 그에게도 지상에서 평온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간의 수명은 엘프나 드워프 등 다른 종족들보다 짧기에, 다시 단신이 되고 여행 시작된다. 하지만 대표적인 '악의 종족'이라는 낙인이 있는 '드로우'인 그를 받아주는 곳은 보이지 않고 결국 최북방이라는 '아이스윈드 데일'에서 고독한 정착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의 운명의 동료라고 할 수 있는 드워프 '부르노'와 인간' 캐티-브리'를 만난다.

위태위태한 드리즈트의 무용담도 볼만 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점은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들이다. 인간의 성향이 신을 만드는가?(혹은 이런 인간 성향의 집합체를 신이라 부르는가?) 신이 인간의 성향을 결정하는가? 신을 믿는 것에는 꼭 그 신에 대한 앎이 필요한가? 신에 대한 앎이 없이 자신의 신념만으로도 미지의 신을 믿는다고 할 수 있나? 각기 다른 성향의 수 많은 신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신은 유일한데 각자가 신을 다르게 받아들여 해석하나?

이런 질문들에 대한 확실한 답은 역시 이 책에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확고한 믿음은 신에 대한 독실한 믿음과 닮아 있다는 점이다. 결론은 어찌보면 '신은 나무가지 끝에도 있고, 바위 밑에도 있다.'라는 말과 비슷하다고 할까?

드디어 지상에서 그가 찾던 '평온한 정착'에 성공한 '드리즈트'.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도 그를 기다리는 수 많은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 긴 '드리즈트의 연대기'의 다른 책들도 조만간 번역되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07/10/17 01:00 2007/10/17 01:00

다크엘프 트릴로지 - 망명 (the Dark Elf Triology - Ex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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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 트릴로지'의 두번 째, '망명(Exile)'.

1권의 마지막에서 자신의 고향인 '멘조베란잔'을 떠나온 '드리즈트'. 그래서 곧바로 지상에서의 대모험이 시작되는가 했지만 섣부른 상상이었다. 그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곳이 언다다크(Underdark)인지라 차마 지상으로는 나가지 못했나보다.

황량한 '언더다크'에서 말이 없는 그의 친구' 구엔하이버'와 지내면서, 드리즈트는 점점 그를 올바른 길로 이끌었던 성품이 허물어져감을 느낀다. 고독을 통해 그의 내면의 '사냥꾼'은 그를 짐슴처럼 만들고 그의 고뇌는 끝나지 않는다. ('사냥꾼'을 통해 D&D 설정집에 나온 '드리즈트'의 설정 외 '바바리안'이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인간(물론 드리즈트는 인간은 아니지만 이 판타지 세계의 몇몇 종족들은 '유사인종'으로 인간 수준의 지적능력을 보인다.)의 성품이 사회의 성격을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의 성격이 인간의 성품을 결정하는 것일까?' 방황하는 드리즈트를 통해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다정한 노움 '벨워', 사악한 마법사의 마법으로 '후크 호러'가된 페크 '크래커'와 만나면서 '드리즈트'는 '따뜻한 유대관계'에 대한 자신의 '본능적인 그리움'을 알게 되지만, '저주받은 드로우'라는 자신 내면의 죄책감과 자신의 부르는 불행으로 결국 이 친구들과 타의와 자의에 의해 헤어지게 된다. 아버지 '자크나페인'을 두번 죽이게 된 드디어 드리즈트는 다시 고독을 안고 지상 세계로 향한다.

책 중간중간에 껴있는 드리즈트의 '회상록'에서 나오는 그의 유명한 친구들 '브루노', '울프가르'이 보이는 점으로 봤을 때 긴 드리즈트의 이야기에서 이 작품이 순서로는 첫번째지만, 쓰여진 때는 처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찾아보니 정말 그런가보다. 재밌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조금은 부자연그럽고 작위적이라고 할까?

이 삼부작의 마지막 이야기에서 드리즈트는 '판타지 영웅'다운 모습을 과연 보여줄 수 있을까?

2007/10/05 21:14 2007/10/05 21:14

퍼언 연대기 - 드래곤의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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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언 연대기', '용기사 3부작'의 두번 째 '드래곤의 탐색(Dragonquest)'.

원래 제목이 일본의 모 게임과 같은, '드래곤의 탐색'은 '드래곤의 비상'의 마지막 장면에서 7 회년 후의 상황을 담고 있다. '드래곤의 비상'이 퍼언을 위협하는 '붉은 별'과 '사포'에 대한 퍼언인들의 도전이 주요 키워드라면, '드래곤의 탐색'의 키워드는 '갈등'과 '탐색'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롤 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에 담고 있다.

첫 권에 비해 방대한 분량은 '연대기'에 걸맞게 긴 시간대를 보여줄 듯하지만, 사실 소설 속에서 흐른 시간은 첫 권에 비해 짧고, '플라르'와 '레사'를 중심으로 흘러가던 첫 권과는 달리 많은 '플라르'의 이복동생 '프로노'와 새로운 용굴모 '브레키', '루사아 성채'의 태수 '잭섬' 등 여러 인물들이 이야기의 중심에 등장한다.

400 회년이라는 시간의 차이에 따른 구시대인과 현시대인사이의 갈등, 용굴과 성채의 갈등, 용굴모와 용굴모의 갈등 등 다양한 갈등이 교차되고 이 '갈등'은 용기사들의 '탐색'과 어우러져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놓은 기술력을 보유했던 선조들의 기술의 발견, 불도마뱀과 땅벌레의 발견으로 용기사들의 마지막 염원을 한 발 더 나아가지만 결국 선조들이 그 염원을 이루지 못했던 이유를 알게된다.

이런 복잡함 속에서 상당히 농도 짙은(?) 이야기가 등장하고 '사이언스 판타지'답게 중학교 수준의 과학 상식들이 숨에 있어 여러가지 재미를 안겨준다. 그리고 남성중심의 판타지 소설에서 찾아보기 힘든 섬세한 심리묘사는 다시 한번 작가가 여성임을 느끼게 한다.

이야기는 변종이라고 할 수있는 '백색 드래곤'이 탄생하는 에피소드로 끝이난다. 이 '백색 드래곤'은 셋째 권의 제목이기도 하다. 첫째 권의 주인공인 '플라프'와 '레사'의 비중은 점점 줄어든다. '레사'는 두째 권 처음부터 그렇고 '플라르'의 비중도 '새로운 용기사'들에게 나누어진다. 다음 이야기는 다음 세대가 중심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드래곤의 탐색'에서 보여지는 갈등들은 장소가 '퍼언'이고 지금과는 다른 배경들이 많지만,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난 있을 법한 모습이다. 소설 속에서는 퍼언의 인물들로 대치되었지만,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이나 사회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갈등, 기득권 세력간의 권력 다툼 등 지금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소설이 쓰여질 당시에도 역시 이른 갈등들이 있었겠지?

이번 '탐색'의 결과로 퍼언에서 드래곤과 용기사들의 입지는 상당히 줄어들었다. 앞으로 과연 이들이 어떤 활약을 할 수 있을까?
2007/10/01 22:14 2007/10/01 22:14

다크엘프 트릴로지 - 고향 (the Dark Elf Triology - Home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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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RG'의 룰(Rule)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TSR의 'D&D(Dungeon & Dragons)'. 'D&D'의 여러 세계관 (Greyhawk, Eberron, Dragonlance, Forgotten Realms, Planescape 등) 가운데서도 가장 인기가 좋은 '포가튼 렐름(Forgotten Realms)'. 그 '포가튼 렐름'의 수 많은 영웅들 가운데 TRPG를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은 꿈꾸었을 '이도류'의 달인 '드리즈트(Drizzt)'.

수 많은 영웅들이 즐비하고 지나가던 행인도 레벨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파워풀한 세계관 '포가튼 랠름'. TRPG를 즐겨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한 번은 이 세계관으로 진행해 보았을 것이고, TRPG가 생소한  사람이라도 '컴퓨터 RPG'의 명작 '발더스 게이트(Baldur's Gate)'를 해본 사람이라면 귀에 익은 이름일 것이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D&D'의 가장 인기있는 세계관이고 'Baldur's Gate'와 마찬가지로 이 세계관을 공유하는 소설이 있으니 이번에 소개하는 '다크엘프 트릴로지'이다. 비단 이 두 소설뿐만 아니라 매년 수 많은 작가들에 의해 수 많은 소설들이 '포가튼 렐름'의 세계관으로 나오고 있으니 이 세계관이 얼마나 탄탄한지는 긴 말이 필요 없겠다.

TRPG를 수 년간 해본, 개인적인 견해는, 아마도 이렇게 까지 자세하고 탄탄한 판타지 세계관은 아마도 무무협소설의 대가 '김용'이 변형하고 창조해낸 '무림'말고는 찾아보기 힘들겠다. (그렇다고 '디테일'면에서 D&D의 다른 세계관이 많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포가튼 랠름'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는 각종 룰 북(Rule Book)을 통해 펼쳐지는 각 지역의 환경과 모습들, 각종 조직과 단체들, 여러 직업과 마법 아이템들, 그리고 여러 영웅들까지...이 세계관의 완성도는 끊임없이 발매되는 룰 북과 소설들이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포가튼 렐름'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영웅, '드리즈트'. 물론 그에 버금가는 '엘민스터(Elminster)'나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 등이 있지만, 이들의 황당무계한 능력과 힘을 보여주는, 정상적인(?)TRPG 게임과는 거리를 보여주는 영웅들이라면, '드리즈트'는 그야말로 소박한 영웅이다. 이 'D&D' TRPG를 Fighter 계열로 참여해본 사람이라면 그의 현란한 두 자루의 검은 그야말로 '로망'이라 하겠다. 또 다른 영웅들과 '드리즈트'의 차이점은, 바로 그가 수 많은 종족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악의 종족'이라고 할 수 있는 '다크엘프'혹은 '드로우(Drow)'라고 불리는 종족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그를 더욱 돋보이면서도 신비롭게 한다. 이런 '드리즈트'를 창조하고 그의 굴곡 많은 삶을 그려낸 작가는 바로 'R. A. Salvatore'로 '포가튼 렐름'표 소설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리고 '다크엘프 트릴로지'는 장대한 '드리즈트' 이야기의 시작이되는 작품이다.

'다크엘프 트릴로지'의 첫번째 '고향(homeland)'는 일반인은 물론 'D&D'를 접해본 사람들에게도 낯선, '포가튼 렐름'의 땅 속 세상이자 드로우(Drow)들의 고향인 '언더다크(Underdark)'의 환경과 드로우 사회의 묘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이점은 TRPG 게이머라면 '포가튼 렐름' 세계관을 진행하면서 궁금했던, '광신'과 '투쟁'으로 가득찬 '드로우의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기대했던 '험난한 모험과 엄청난 무위'보다는 좀 더 심오한 면이 있는 소설로 '드리즈트'의 성장과 내면의 갈등을 통해 그의 '인간성'(Humanism)'에 대한 갈망을 그려낸다. 그리고 이 첫번째 권은 그가 드로우 사회로부터 도망쳐 방랑을 시작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액션활극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좀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드리즈트'의 긴 이야기는 이제 막 첫발을 내딛었을 뿐이고, 아직 완결되지도 않았다.

언제나 궁금했지만, 원서를 구하기도 번거롭고 영어라는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그림의 떡'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번에 '다크엘프 트릴로지'가 정식발매되어 TRPG 매니아로서 너무나 반가울 따름이다. 이번 '다크엘프 트릴로지'를 계기로 이어지는 삼부작들, 'Icewind Dale trilogy'나 'The Hunter's Blade trilogy' 등도 정식발매되기를 바란다.
2007/09/27 14:46 2007/09/27 14:46

폴 오스터 - 유령들 (뉴욕 3부작 中)

뉴욕 3부작의 두번째 이야기, '유령들'.

이야기는 역시 앞선 '유리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탐정소설의 형식을 빌려 진행된다. 특이한 점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화이트, 블루, 블랙 등 모두 '색이름'으로 흔한 이름이라는 점이다. 역시 익명성과 관련있는 것일까? 흔한 이름이기에 독자는 등장인물 가운데 누구나 될 수 있다.

앞선 '유리의 도시'에서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두 이야기 모두다 '동감'에 대한 이야기다. '유리의 도시'에서 마지막 순간에 '퀸'이 느꼈을 '피터'의 고독을 상상할 수 있고, '유령들'에서 블루는 블랙에게 호감을 갖고 동화되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퀸이 스틸먼을 추적하며 지났던 수많은 뉴욕의 거리들처럼, 역시 여기서도 상상만해도 멋진 뉴욕의 풍경들을 그려내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궤적을 좆아 읽다보면 뉴욕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여서, 분명히 작가는 뉴욕을 너무나 사랑하는 뉴요커임에 틀림없으리라. 뉴욕의 풍경과 더불어 옴니버스처럼 펼쳐지는 이야기들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블루가 블랙을 관찰하면서 떠오르는 상념들과 추억들은 블랙의 모습과 교차적으로 펼쳐진다.

작가는 어쩌면 산업혁명을 통해-한 치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철창 속 쳇바퀴 위를 구르던 인간이 탈근대화와 함께 자유 혹은 여유로 가득찬 푸른 들판으로 돌아왔을 때의 충격을 보여주고 싶었을 수도 있다.

제목에서 말하는 '유령들'이란 그런 들판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 실패한 사람들을 의미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이 소설 속에서처럼, 자신의 삶의 더 많은 부분이 자신보다 타인으로 가득한 사람들, 예를 들면 작가나 탐정같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비슷하겠다. 허수아비처럼.

이야기는 빛바랜 사진처럼 끝난다. 이야기는 끝이지만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 폴 오스터, 그의 소설은 공허하면서도 멋지다. 작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관계'에 대한 기묘한 이야기 속에서 나는 아직 그 실마리도 잡지 못했다.

언젠가 낙엽이 지고 노을로 붉게 물든 뉴욕의 거리를 걸어보고 싶다.

2007/09/19 16:34 2007/09/19 16:34

퍼언 연대기 - 드래곤의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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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판타지'라는 장대한 '퍼언 연대기'. 작가 '앤 맥카프리'가 창조한 이 방대한 연대기 중 첫번째로 국내에 번역 출간된 '용기사 3부작'의 첫번째 이야기 '드래곤의 비상(Dragonflight)'.

우선 이 소설을 설명할 만한 단어들을 열거하면 '불굴의 의지, 기사도, 교감, 로맨스, 공중전투, 그리고 공간이동'정도가 되겠다. 이야기의 중심에 여주인공(레사)를 내세운 '드래곤의 비상'은 여성작가의 섬세함으로 풀어나간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 점점 성장하는 여주인공 '레사'의 모습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진 '오노 휴우미'의 '십이국기' 중 '요코'의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성별만 다를 뿐, 이런 모습은 많은 판타지 소설 속 주인공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하겠다.

'플라프'와 '프로노', 두 이복 형제를 비롯한 용기사들의 기사도, 용기사들과 드래곤들의 교감 그리고 드래곤들의 '간극'을 뛰어넘는 '워프'같은 능력은 소설의 묘미이자 이 소설을 판타지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드래곤과 용기사가 '사포'를 상대로 싸우는 모습은 가슴 한 켠에 '전투기와 혼연일체된 파일롯의 로망'을 끌어오르게 한다. 용기사들사이의 신경전이나 용굴과 성채들의 알력은 이젠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전개를 보이지만, 식상하지 않다. 더구나 이 소설은 2000년대가 아닌 1968년(!)에 쓰여졌다.

소설은 판타지적 요소들 뿐만 아니라, '기사도'와 함께 빠질 수 없는 '레이디와의 로맨스'에도 충실하다. 숙명의 배우자로서 플라프와 레사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붉은 별'의 공격이 시작되면서 긴박하게 흐르고 첫번째 출격 직전의 상황은 로맨스의 첫번째 정점이라고 하겠다.

'퍼언 연대기'를 '그냥 판타지'가 아닌 '사이언스 판타지'로 만드는 요소도 충분하다. 퍼언인들이 사실은 지구인들의 후예로 우주여행을 통해 다른 항성계에 이주했다는 설정부터 퍼언의 토착 동물을 유전공학으로 개량하여 '드래곤'을 만들어냈다는 설정까지 여러 설정에서 각종 과학의 힘을 빌리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사백 회년의 휴지기'는 항성계의 여러 행성들 사이에서 미치는 인력때문이라는 그럴싸한 배경이 깔려있다.

이런 판타지적이고 과학적인 요소들이 얽혀 풀어나가는 이야기들, '붉은 별'에 대한 '용굴'의 대비와 사백 회년 전의 비밀은 공간적 간극뿐만 아니라 시간적 간극까지 뛰어넘는 드래곤의 능력으로 연결되고 퍼언의 세계는 확장된다. 시간을 초월한 여행과 시공의 '필연적이지만 위태로운 균형'은 결국 '돌고 도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연상시킨다. 과거와 미래, 양 시간대의 교류는 한 쪽이 없으면 양쪽다 무너질 수 밖에 없는 '달걀과 닭'의 관계와 같고, 달걀이면서 닭인 생명체는 없듯이 양 시간대의 균형을 생각하는 모습은 많은 '시간여행'물에서 고려되는 '시간의 충돌'을 염두하고 있다. 또 이 시간의 초월이라는 경천동지할 드래곤의 능력으로 여러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도 갖게 된다.

부록을 제외한 본문만 400페이지가 넘는 3부작의 첫 번째 이야기도 '다섯개 용굴 연합 드래곤 편대들의 비상'으로 끝이난다. 하지만 더 두꺼운 분량의 두 권이 더 남아있으니 아쉬워하긴 이르다. 이번 3부작뿐만 아니라, '퍼언 연대기'라는 길고 방대한 이야기의 다른 조각들도 소개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2007/09/13 15:38 2007/09/13 15:38

폴 오스터 - 유리의 도시 (뉴욕 3부작 中)

예전에 '파스텔뮤직'의 어떤 음반을 사고, 이벤트 상품으로 받았던 '폴 오스터'의 대표작이라는 '뉴욕 3부작'. 첫번째 이야기 '유리의 도시'.

솔직히 이야기하면 참 혼란스럽다.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익명성과 진실된 이름, 그리고 인간의 추락... 이런 것들이 작가가 전하려는 내용인지도 모르겠다.

작품 속에서 '윌리엄 월슨'이라는 필명으로 '맥스 워크'의 이야기를 쓰는 '데니얼 퀸'의 관계는 '폴 오스터'란 필명으로 '데니얼 퀸'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의 관계를 빗댄 모습일지도 모른다. '폴 오스터'가 작가의 본명이라면, 소설 속 오스터의 친구인 화자의 입으로 '데니얼 퀸'의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의 관계로 대치될 수도 있겠다. 사실 무명의 화자는 소설 속 '폴 오스터'일 수도 있겠다.

소설 속 '돈키호테에 대한 대화'-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실존 인물이고 돈키호테의 의도에 의해 세르반테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는-처럼 소설 자체도 그 형식을 빌린 듯도 하다.  하지만 소설 속 돈키호테가 누군지 확실하지는 않다. 데니얼 퀸일 수도, 폴 오스터일 수도 있다. 사실 두 인물이 동일이거나, 퀸은 단지 소설 속 오스터가 지어낸 인물일지도 모른다. '돈키호테(소설 속 폴 오스터 혹은 데니얼 퀸)'를 실제 지어낸 사람이 돈키호테(작가 폴 오스터)이과 소개하는 사람이 '세르반테스(소설 속 화자)'인 것처럼.

소설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해서 쓴다고 했지만, 써놓고 보니 참 어지럽다. 유리의 도시가 그렇다. 익명성의 탈을 쓰고 시작된 이야기는 진실된 이름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고 다시 이름을 잃어가는, 어쩌면 존재를 읽어가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 한 사람으로서의 현대인의 익명성. 작가는 뉴욕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서로 서로에게 무관심한, 그 익명성에 대해 생각하길 바란 건 아니었을까?  이름이 존재를 나타낼 수 있을까? 우리의 명함과 물질들이 이름을 대신할 수 있을까? 그 명함과 물질들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이름도 존재도 사라지는 것을까? 진정한 나의 존재를 나타내는 이름은 무엇일까? 이런 이상한 질문들이 자꾸 떠오른다.

어린 시절을 어둠 속에서 보냈던 '피터 스틸먼'처럼, 데니얼 퀸도 마지막에는 피터의 경험을 하게된 것일까? 명함과 물질을 잃어가면서 피터의 아버지 스틸먼이 피터에게서 찾으려했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간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면 소설 속에 누가 '아(我)'이고 '타(他)'인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어파리 사람의 본명 또한 다른 수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또 다른 익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뉴욕이라는 대도시 속에서 펼쳐지는 꿈같은 현대식 도시형 판타지가 바로 '유리의 도시'를 조금은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일 수도 있겠다.

*작품의 깊이에 조금은 놀랍기도 하다. 아직 문학에 대해 짧은 나에게는 순수문학과 장르문학 사이의 깊이 차로 보인다.

2007/09/08 23:07 2007/09/08 23:07

베르나르 베르베르 - 파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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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최근작 '파피용'.

과학으로 포장한 인문학 소설이라고 할까? '아버지의 아버지들'에서 보여준 인간의 근원에 대한 탐구나, '타나토노트'의 사후 세계에 대한 고찰, '뇌'의 인체에 대한 시각에 이어 이번에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상상을 담고 있다.

'마지막 희망'이라는 프로젝트가 조직되고 초거대 우주비행선 '파피용'을 만들어 지구를 탈출하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인 첫번째 장은 정말 TV 시리즈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두번째 장에서, 지구를 탈출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지만 결국 그 목적을 망각하고 인류의 역사를 우주비행선 '파피용' 안에서 되풀이 하는 모습은 '결국 인간은 인간성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체념과 절망을 느끼게까지 한다.

새로운 지구를 찾아 새로운 인류의 시작을 알리는 마지막 장은, 창조론과 진화론의 적당한 타협점으로 나같은 공상하기 좋아하는 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보았을 '현생인류의 조상이 또 다른 지구에서 왔다.'는 상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새로운 지구의 최초의 인간인 '에야'가 이야기하는 환생이론과 우주여행의 결합은 너무나 익숙한 소재다. 바로 우리나라의 PC게임 '창세기전' 시리즈를 관통하는 이야기들, 특히 '창세기전3'와 '창세기전3 파트2'를 통해 밝혀지는 '아르케'와 '안타리아'의 관계나 영혼 전이를 통한 모든 생명체의 환생이라는 소재와 너무나 유사하다. 혹시 베르나르가 이 게임을 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소설은 재밌는 편이었지만, 사실 '뫼비우스'라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삽화가 더 좋았다. 그런데 '뫼비우스'라는 이름도 창세기전과 관련이 깊다. 창세기전 속의 우주는 바로 환생과 맞물려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우주'이다.

'뇌'에서도 그랬고, '인간'도 그렇고 베르나르표 과학소설은 몇 년전에 밑천을 다했다고 봐야겠다. 그래도 재밌는 편이지만 베스트셀러에 오래 머무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오래 머물고 있으니 조금은 아이러니하다.

뒷표지에 보니 신작 '신'이 번역중인가보다. 당연히 '타나토노트'와 '천사들의 제국'의 후속편이겠고 무려 3부작이라니 기대가 크다. 제발 실망시키지 말아줘요.
2007/09/03 23:59 2007/09/03 23:59

책과 함께 할 9월

다가오는 가을에 대비하여(?) 8월에는 '특별히' 그리고 오랜만에 책을 많이 샀습니다. 기존에 이용하던 '예스24'에서 '모닝365'라는 서적전문 쇼핑몰로 눈을 돌렸더니 쿠폰이벤트가 한창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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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구입한 '아발론 연대기' 세트. 이것만 예스24에서 구입했습니다. 모닝365보다 가격은 비쌌는데 '1만원 할인쿠폰'을 증정하고 있어서 약간 저렴하더군요. 예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미루고 있었는데 큰 마음 먹고 주문했지요. 케이스나 책 표지나 너무나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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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구입한 '퍼언 연대기' 세트. 비치 타월과 가방 증정 이벤트 중이었습니다. 모닝365에서는 '4천원 할인 쿠폰'도 증정하길레 샀습니다. 약간의 SF가 가미된 판타지 소설이라는데 제가 생각하고 있던 판타지 세계(?)와 비슷한 점이 있는 듯하여 흥미가 가더군요. 시리즈로 상당히 많은 책들이 나왔는데 한국어로 번역되는 책은 이번 삼부작이 처음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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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룬의 아이들' 1부(총 7권)과 2부 데모닉(총 8권)을 전권 구입했습니다. 다행히 각 권마다 '1천원 할인 쿠폰'이 딸려있더군요. 이 것도 소문으로만 듣던 판타지 소설인데 완결이 되지 않아 구입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새 완결이 되었더군요. 그런데 3부도 나올 예정인가 봅니다.

추가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도 주문했습니다. 베르나르의 소설은 점점 깊이가 얕아져 큰 기대는 안하지만, 우주여행의 이야기라니 조금 끌리더군요.

이제 밤 공기가 제법 선선하네요. 좀 한가한 9월에는 이 책들과 함께 보내야겠습니다. 모닝365에서는 8월에 이어 9월에도 5천원 이상 도서에 대한 '1천원 할인 쿠폰' 이벤트가 계속 진행 중이네요.
2007/09/01 20:33 2007/09/01 20:33

오쿠다 히데오 - 걸

남성이 쓴 '여성 성장소설(?)', '걸(Girl)'.

가볍게 읽을 수 있을 법한 표지와 제목에 끌려, 더구나 할인쿠폰 이벤트까지 진행 중이어서 장바구니에 담은 소설이다. '오쿠다 히데오', 나름 요즈음 인기 상승 중인 작가인 듯한데, 나에게는 '걸'이 처음으로 읽는 그의 작품.

"작가가 정말 남자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성들의 심리와 취향, 그리고 여성 세계를 섬세하게(물론 역시 남성이 바라보는 입장에서) 그려내고 있다. 파릇파릇한 젊음을 상징하는 단어 '걸'을 버리고 진정한 '여성'으로 성장하는 모습에, 이 소설은 '어른들의 성장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5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걸'은 여러 방면에서 사회와 충돌을 격계되는 여성들의 고충과 성장을 각각 보여주고 있다. '띠동갑'의 '요코'는 띠동갑에 가까운 신입사원에 빠져들지만 결국 자신의 나이에 맞는 '남성 취향(?)'을 찾아가게된다. '히로'의 '세이코'는 회사 내부의  파벌과 그 파벌사이의 알력에의해 자신보다 연상의 남성 부하직원과 마찰을 겪지만 당당이 맞서서 여성의 '직장내 입지'를 찾아간다. '걸'의 '유키코'는 자신보다 어린 사원들을 부러워하며 나이를 극복하려는 스타일을 추구하지만 결국 자신의 나이에 적당한 스타일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아파트'의 '유카리'는 아파트 구입을 결심하고 지금까지 적당한 사치와 모호한 직업의식과  함께한 '걸'의 생활을 버리고 동년배 직장인들이 누구나 갖고있는 퇴사에 대한 두려움을 이해하고 자신의 나이에 합당한 '생활'을 시작한다. '워킹맘'의 '다카코'는 편모가정의 어머니로 직장에 육아문제로 편의를 보는 여성들을 경멸하며, 직장과 육아에서 모두 완벽하려하지만 문제에 부딛히고 결국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의 싫어했던 직장과 '육아'를 함께 유지하는 길을 간다.

어른이 되었다고 성장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죽는 순간까지 사람은 계속 성장하고 있일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 늦은 나이에 '걸'에서 어른이 되는 여자들의 이야기 '걸'. 가볍고 재밌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볼 점 또한 제시하는 소설이다. 
2007/07/08 16:56 2007/07/08 1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