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아이 - B Tl B 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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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산통을 겪은 후에 발매된, 삼인조 '어른아이'의 데뷔 앨범 'B Tl B Tl'.

밴드 이름이로는 많이 생소할 '어른아이'입니다. 홍대 클럽 '빵' 등에서 조용히 활동해왔고, 밴드가 들려주는 음악 자체도 처음보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주는 음악은 아니기에 한번 듣고 '괜찮았다' 정도로 스칠 수 있었겠구요. 오래전부터 음반 작업을 한다고 들은 듯한데, 11월 말이 되어서야 발매되었으니 그 작업이 상당히 힘들었나봅니다.  

빗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앨범 타이틀과 같은 제목의 첫곡 'B Tl B Tl'은 곡으로 주로 우울하면서도 차분한 음악을 들려주는 '어른아이'의 색깔을 보여주는 곡입니다. 첫곡으로 나쁘지 않지만 좀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첫곡에 '강렬한 인상'(어른아이에게는 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이 중요한데, 그런 강렬함을 주기에는 너무 차분하고 쳐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Star', 첫곡으로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곡입니다. 우울하지 않고 오히려 조금 밝은 느낌도 나는 점이 첫곡으로 괜찮았겠다는 생각이 들게합니다. 도입부의 라디오를 통해듣는 느낌이 나는 보컬과 연주가 조금은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진 겨울이라는 생각도 들게하네요.

'꿈의 계단', 'Star'에서 시작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도 더 몽롱한 느낌입니다. 꿈길을 달리는 듯한 기타 연주와 나즈막히 속삭이는 보컬이 '꿈의 계단'을 걷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합니다.

'Make Up', 역시나 몽롱한 곡입니다. '꿈의 계단'의 '꿈 속의 몽롱함'아라면 'Make Up'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있을 법한 몽롱함'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초반 낮게 깔리던 보컬이 드럼 연주와 함께 높아지면서 느릿느릿한 행진을 떠오르게 합니다. 차분한 발걸음이랄까요.

'아니다', 개인적으로 뒤에 나올 '상실'과 함께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마음에 드는 곡입니다. 제목처럼 보컬과 가사에서 '쓸쓸한 실망'이 뭍어납니다. 처절하지 않고 냉정과 달관이 느껴지기에 그 실망이 더 무섭기만 합니다. '띠띠띠', '따따따' 같은 무의미한 가사들에서도 그 쓸쓸함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Sad Thing', "I saw you, you in me"와 "it's so sad, sad thing'을 주구장창 외치는 곡입니다. 파스텔뮤직의 컴필레이션 앨범 'Cracker'에 수록되어 익숙한 곡이기도 하구요.

'가까우리?', street noise라는 거리의 소리들과 소음들을 담고 있는 interude같은 트랙입니다. 현대인이 느끼는 '군중 속의 고독'을 전달하려고 한 것일까요? 이어지는 트랙 '상실'과 언관이 있어보입니다.

'상실', 쭈욱 이어져오던 몽롱함을 벗어나 현실이 느껴지는 곡입니다. 수록곡들 중 가장 긴, 뭔가 제대로된 내용을 가사를 갖춘 곡이기도 하구요. 가사에 등장하는 '나'와 '그녀'는 동일한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라진 '따뜻한 마음'과 '그날의 온기', '삶의 의미' 혹은 '봄'을 상실한 담담한 상실감이 느껴집니다.

'Lethe', 그리스신화 등장하는 '망각의 강'의 이름입니다. 죽은 자는 이 강의 물을 마시고 이승의 기억을 모두 잊는다고 하네요. 연주곡으로 반복되는 멜로디가 '망각'으로 빠져들게 하는 느낌이네요.

'It's raing', 제목에서부터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 빗소리가 들리는 첫곡 'B Tl B Tl'과 짝을 이루는 곡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제목과는 달리 'B Tl B Tl'에서도 들을 수 있는 빗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마도 비가 내리고 있었나 봅니다.

전체적으로 우울한 곡들이 쭉 이어지는 흔하지 않은 앨범입니다. 우울하고 가라앉는 느낌이 강한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듣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데, 이 앨범은 그렇지 않네요. 건너뛰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편안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잡아두는 신비한 호소력이 있다고 할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결정적인 한 방'은 찾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빠지는 점이 있지도 않은, 고르게 분포한 그 무난함이 그 신비함의 핵심 중 하나가 아닐까하네요.

인상적이지 않지만, '파스텔뮤직' 소속의 많은 밴드들 중 '미스티 블루(Misty Blue)' 등과 더불어 '파스텔뮤직'다운 음악적 색깔을 들려주는 밴드 '어른아이'의 데뷔앨범 'B Tl B Tl'. 고요하고 긴 겨울의 밤, 조용한 방 안에서 그 만큼이나 조용한 어른아이의 음악과 함께 하는 건 어떨까요? 별점은 4개입니다.

*이 글의 핵심 내용은 12월 초에 썼습니다. 조금 살을 붙여서 이제야 완성해서 올리네요.
2007/01/04 23:25 2007/01/04 23:25

Humming Urban Stereo - Monoch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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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과 2집 활동을 정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Humming Urban Stereo'의 두번째 EP 'Monochrome'.

'Humming Urban Stereo'는 인터넷을 통해 유명해진 곡 'Banana Shake'가 수록된 데뷔 EP 'Short Cake'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이후 발매된 2CD로 발매된 1집 'Very Very Nice! and Short Cake'는 EP 'Shork Cake'와 '이지린'의 홈페이지(지금은 폐쇄되었지만)에서 100장 한정으로 발매되어 일부 매니아들이 소장하고 있는 EP 'Cove +3'에서 많은 수록곡들을 옮겨와서 정규앨범이라기 보다는 EP 모음집에 가까운 성격의 음반이 되어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2집 'Purple Drop'도 상큼한 곡들이 수록하고 있었지만 아쉬움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집이 발표된지 약 7개월만에 발표된 EP 'Monochrome', 1집과 2집 활동을 정리하는 의미의 EP라기에 약간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받아든 EP 'Monochrome', 확실히 디지팩의 디자인만으로는 앞선 앨범들의 연장선 상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과연 내용물은 어떨까요?

'님', '이지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애절한 '발라드' 곡입니다. 이전까지 Humming Urban Stereo의 곡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정들을 담고 있습니다. 가사에서 상당히 한국적인 '한'의 정서가 담겨있는데, 가사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고등학교 시절 즈음에 읽었던 시조 한 수가 떠올랐습니다.

동짓날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바로 '황진이'의 시조인데, '님'이 들려주는 절절한 감정이 이 시조와 닮아있지 않나요? (첫곡도 소개해야하는데 첫곡에 대해 생각하다 '님'으로 이어지면 그만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지랄', 제목부터 상당히 도발적인데 이전까지 'Humming Urban Stereo'의 음반들에서 듣기 힘들었던 강한 비트가 인상적인 곡입니다. EP나 2장의 앨범에 수록된 곡들에 '댄서블'한 곡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가벼운 느낌'은 좀 석연치 않았는데, '지랄'에서는 이전까지와는 다른 '무게'가 느껴집니다.

'Sera Un Zoro', 제목에 '그녀는 여우가 될 거야'라는 뜻을 담고 있는 곡입니다. '이지린'이 부른 '님', '시에나'가 부른 '지랄'과 함께 '허밍걸'이 부른 이곡으로 삼인삼색(三人三色)의 '삼단콤보'가 완성됩니다. 톡톡 튀는 보컬이 상당히 흥겹습니다. 외국어 가사 뿐만 아니라 간간히 들리는 트럼펫과 여러 소리들이 이국적 풍경을 자아냅니다.

'Date', 무엇보다도 샘플링으로 사용한 배경음이 귀에 들어오는 곡입니다. 바로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잊을 수 없는 배경음악이죠.

'Say It's So', 'Humming Urban Stereo'다운 신나는 곡입니다. 듣다보면 가벼운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어집니다.

'에로 여배우'라는 상당히 선정적인 제목의 곡으로 도입부에서부터 끈쩍한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다분히 '관심 끌기용'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한번 가사를 자세히 고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성과 외모 갖춘 사람이 왜 에로 여배우가 되었을지가 궁금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에로 여배우'라는 사실 만으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세상을 비꼬고 있는 가사라는 생각이 드네요. 보컬은 '루싸이트 토끼'의 보컬 '조예진'이라고 하네요.

1집과 2집을 정리하는 EP라고 하지만, '정리'보다는 앞으로 찾아올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EP라는 느낌이 더 강합니다. 그만큼 지금까지 들을 수 없었던 새로움을 들을 수 있고, 그 변화가 상당히 반갑고 기대됩니다. 'Humming Urban Stereo'의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 음반을 추천한다면, 데뷔 EP 'Short Cake'과 더불어 이 EP를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요.

2006/11/21 23:32 2006/11/21 23:32

이루마 - h.i.s. monologue (one day diary... 19th sept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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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정규앨범과 비정규 작업 등으로 꾸준히(1년에 앨범 2장 정도) 앨범을 발표하고 있는 '이루마'. 역시 올해도 올 봄에 발매되었던, 비정규 작업인 '봄의 왈츠 classic'에 이어 5번째 정규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정규앨범의 타이틀은 'h.i.s monologue', 부제로 'one day diary... 19th september'를 달고 있습니다. 행여나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군대가기 전 하루동안 뚝딱 만들어낸 앨범'이라고...

아기자기한 서정미를 들려주는 '이루마 스타일'을 정립한 두번째 정규앨범 'First Love'와 그 스타일을 이어간 3번째 'From The Yellow Room'에 이어, 작년 11월에 발매된 4번째 'Poemusic'은 '정규앨범'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낯선 소리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첫 세장의 정규앨범을 통해 들려주었던 '피아노'를 기본으로 하여 '현악'이라는 양념을 가미한, 전형적인 '이루마 스타일'이 아니었으니까요. '드럼', '기타', '베이스' 등과 함께한 'Cross-over'적인 시도는 지난 정규앨범들의 연장선에서 벗어나있었기에, 정규앨범이라기보다는 이미 2장이나 발표했던  'special album'이라고 불러야 어울릴 법한 것이었습니다. 짜임새 속에서 풋풋한 감성을 느낄수 있었던 'First Love'와는 달리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짜임새'가 부족했습니다. 물론 'Poemusic'도 감상용으로 좋은 편이었고 앞선 앨범들에서의 감수성이 느껴지는 'Wonder Boy'같은 곡들도 있었지만,  'Cross-over적인 시도'와 '이루마'다운 감수성이 혼재하면서 '한 편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이리저리 쉬갈겨 쓴 메모들을 모아놓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렇기에 이번 앨범의 발매 전부터 기대만큼의 우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뚜껑은 열렸고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내용물을 담고 있었습니다. 군대가기 전 급하게 만든 앨범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지금까지 그의 정규 앨범들 중에 가장 적은, 10곡을 담고 있지만 전체의 플레이 타임은 48분 정도로 절대 짧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이루마의 곡들이 3~4분대였던 점을 생각한다면 이번 앨범의 수록곡들은 평균 5분에 가까우니, 한 곡 한 곡에 얼마나더 시간을 노력을 기울였을지 유추해 볼 수 있겠습니다.

'자, 이제 그의 독백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h.i.s. monologue', 조용한 전자음과 함께 시작하는 곡입니다. 2분 30초가 안되는 짧은 곡으로 intro의 성격이지만 이번 앨범의 지향점을 간결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루마'의 앨범을  모두 들어보았다면, 비슷한 전자음을 들은 기억이 있을텐데 바로 2004년에 발매된 special album인 'Nocturnal lights...they scatter에서 일겁니다. 수록곡들의 제목만으로도 이런 연상이 단순히 '느낌'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one day diary', 이제까지 '이루마'의 곡들은 5분을 넘지 않았지만 이곡은 7분이 넘는 대곡입니다.(참고로 이번 앨범에서는 5분을 넘는 곡이 절반인 5곡이나 됩니다.) 제목처럼 하루를 담아내고 있는데, 하루 중에도 아침, 점심, 저녁에 따라 많은 것이 변하듯, 서로 다른 3부분으로 나눌 수 있고 어찌 들으면 세 곡을 붙여놓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긴 재생시간에도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데, 세 부분이 마치 전혀 다른 세 곡 같기 때문이죠. 첫번째 부분은 창 밖의 빗소리, 천둥소리와 함께 시작됩니다. 막 잠에서 깨어 눈을 뜬, 어느 비내리는 10월 아침의 곡이죠. 아침이지만 평온하게 흘러가니, 이른 새벽이거나 휴일의 아침일 수도 있겠네요. 이런 날이면 우연히 그리운 얼굴을 보게 될지도 모르죠. 다시 빗소리가 들리면서 곡의 분위기가 바뀝니다. 계속 빗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볼 때, 이제는 실외인듯 하네요. 비와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에서 그리운 뒷모습를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을 헤치며 좇았지만 결국 인파속으로 사라집니다. 천둥소리가 들리면서 곡의 분위기는 마지막으로 변합니다. 다시 여유가 찾아온 밤이겠죠. 일기를 씁니다. 일기장을 덮고 잠이 듭니다. 하루가 그렇게 또 갑니다.

'Septemberise', 조용한 방에서 CDP로 들어보기를 권하는 곡입니다. 피아노 소리 아래로 낮게 깔리는 '이루마'의 흥얼거림을 들어보세요. 이루마의 음성 뿐만 아니라 소리의 '공간적 배치'도 눈에 띄는 곡입니다. 옆에서 들리는 피아노 소리에 화답하는 듯 잠시 멀리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이제까지 이루마의 곡들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또 다른 시도'네요. 9월을 뜻하는 단어 'September'를 변형해서 만든 단어 'Septemberise', '9월이 되다' 혹은 '9월이 오다' 정도의 뜻을 담고 있을까요? 경쾌한 피아노의 선율에서 시원한 가을의 공기를 느끼며 점점 물들어가는 가로수 사이로 달리는 자전거가 떠오릅니다.

'Lord... Hold My Hand', 제목만큼이나 평온한 느낌의 곡입니다. 제목과는 관계 없이 역시 '가을'이라는 주제와도 잘 어울리는데, 앞선 곡이 '시원하게 달리는 자전거'같은 곡이라면 이 곡은 단풍잎 끝에 찾아온 가을을 느끼며 걷는 '여유로운 늦은 오후의 산책'같은 곡입니다.

'air on D', '이루마의 곡'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특이한 분위기의 곡입니다. 이전까지는 느낄 수 없었던 '불안함' 혹은 '불온함'이 느껴집니다. 느린 피아노의 쓸쓸함과 바탕에 깔리는 소리들의 긴장감이 어우러지면서 그런 불안함이 조성됩니다. 곡이 진행하면서 한 음 한 음  강하게 들려지는 피아노 소리의 비장함은 그런 느낌을 강화시키구요. 이 곡에서도 '소리의 공간적 배치'가 느껴집니다. 사막의 지평선 끝 신기루처럼 멀리서 들려오는, 마치 어느 이교도들의 예식에서 들을 법한 소리들, 그리고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는 '무희'의 처절하지만 절도있는 춤사위같은 피아노의 선율...그 신기루는 멀어지는 듯하다 다시 가까워지고 이교도들의 예식은 무희의 춤과 어우러집니다. 한 무리가 된, 그 쓸쓸한 축제는 점점 사라집니다. 6분이나 되는 짧지 않은 곡이지만, 처음느끼는 묘한 분위기에 다시 반복해서 듣게되는 상당히 중독적인 곡입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마음에 드는 트랙이기도 하구요.

'The Sundeams They Scatter...', 바로 'Nocturnal lights...they scatter'에 같은 제목으로 실렸던 곡입니다. 이전과 비교해보면 한 음 한 음의 음색이 더 선명해졌고, 음의 울림이 더 맑아진 느낌입니다. 비 온 뒤 맑게 개인 아침,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 사이오 쏟아지는 햇살의 느낌, 제목같은 맑은 느낌입니다.

'Poemusic-Logue', 제목만으로는 전작 'Poemusic'의 연장선에 있거나 전작에 실리지 못한 곡인가 봅니다. 6분 40여초나 되는 역시 긴 곡인데, 만약에 전작에 실렸다면 '베스트 트랙' 중 한 곡이 되었을 만한 곡입니다. 단지 피아노 연주만으로, 속주같은 기교가 없이도 충분한 감정을 전달하는 '이루마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지난 앨범들에서 이루마의 대표곡들같은, 멜로디와 음의 아기자기한 배치에 의한 감정 형성이 아닌 피아노 소리가 음이 아닌 울림으로만 남는 공간에서도 감정이 느껴집니다.

'Improvisation', 역시 많이 본 제목이고 '즉흥시'라는 뜻을 가진 곡입니다. 앞에 너무 좋은 곡들이 즐비해 있어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지만, 'First Love'보다 성숙함이 강했던 세번째 앨범 'From The Yellow Room' 즈음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이루마의 느낌'이 있는 곡입니다.

'H.I.S. Heaven', 제목에서나 소리에서나 첫곡 'h.i.s. monologue'의 연장선에 있을 법한 곡으로 다음 곡이 있지만 이 앨범의 마지막 곡이나 마찬가지인 곡입니다. 유유히 흐르다가 격정적으로 변하는 연주은 그 끝에서 '천국'을 발견한 '환희'였을까요?

'He Knows My Name', 보너스 트랙 성격의 곡입니다. 앞선 곡이 마지막곡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이 곡이 유명한 외국의 CCM 뮤지션의 곡을 피아노로 편곡해서 연주한 곡이기 때문입니다. 이루마의 곡도 아니거나와 CCM 쪽에서는 좀 유명한 곡이니, 정규앨범에서 정식 수록곡이라고 부르기에는 '함량미달'이라고 할 수 있겠죠. (국내에서도 센세이션일 일으켰고 얼마전에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일본의 만화, 노트에 이름이 적히는 죽는 그 만화를 생각해보면 무서운 제목입니다. '그가 내 이름을 알고 있어!!')

'이루마'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2집과 '이루마'를 한국 newage계의 정점에 올려놓았던 3집을 통해 '이루마 = 한국 newage의 새로운 바람' 정도의 등식을 성립시켰다면, 다분히 실험적이었던 4집의 산고를 겪은 후 탄생한 5집 'h.i.s. monologue'을 통해 이루마의 음악세계는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2집과 3집으로 대표되는, 그에게 '대중적 인기'를 선사한 '용매'에 special album과 4집의 실험을 통해 터득한 '용질'을 녹여 완성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만한 앨범 'h.i.s. monologue'로 이제 그는 '젊은 바람'을 넘어서 '거장(巨匠)으로 가는 길'에 한 발을 들여놓고 있습니다. 아직 젊은 그가 '거장으로 가는 길'을 숨죽여 지켜봅시다.

그의 discography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앨범으로 남게될 'h.i.s. monologue', 별점은 4.5개입니다.
2006/11/17 01:56 2006/11/17 01:56

하도 - 우리의 6구역


올해 7월부터 한 달에 하나씩, 꾸준히 결과물들을 발표하고 있는 'TuneTable Movement'의 9월에 발표된 세번째 결과물인 '하도'의 데뷔 앨범 '우리의 6구역'. 올 초에 있었던 작업실 사건을 시작으로 말 많고 탈 많았던 'TubeTable Movement'의 '2006년 문제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문제작'이란 '하도'의 음악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녹음을 꽤 오래전에 해두고도 9월이나 되서야 나왔기에, 첫 결과물을 발표하기까지 'TuneTable Movement'의 '굴곡 많았던 행군'을 대변하는 앨범이라는 의미입니다.

남녀의 키스를 담고 있는 booklet의 표지와 달리 내부는 '하도'의 이미지 사진들로 가득합니다. '하도'의 열성 여성팬들에게는 팬서비스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총 14곡을 담고 있는 앨범의 수록곡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차', 작년 single로 발표되었던 곡으로, 이름 모를 역에 새벽녘에 들어오는 첫차를 알리는 방송과 함께 시작합니다. 앨범의 첫곡이고 제목이 '첫차'이지만 아픈 밤을 지나 돌아가는 화자에게는 서글픈 '막차'나 다름 없습니다.

'길고 지루한 사랑을 꿈꾸다', 낭만적인 제목의 곡입니다. 솔로인 라이브와는 다르게 드럼과 베이스와 함께하면서 좀 더 풍성해지고 포근해진 느낌입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의 노래일까요? 가사에서 '아침'이라고 하고 있지만 '아마도 길고 지루한 사랑을 꿈꾸며 잠든'이라는 후렴구 때문에 모두가 꿈나라에 있는 밤을 떠올리게 됩니다. 

'무한의 인파 속에서',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입니다. 조금은 바쁜 기타 연주 위로 유유히 흐르는 첼로 연주가 참으로 매력적입니다. 제목의 '사람의 파도, 인파'가 첼로의 선율이라면, 그 인파 속에서 뒷모습을 쫓는 화자의 바쁜 발걸음은 기타 연주라고 하고 싶네요. 같은 꽃이 피어나도 다른 이름을 부른다는 가사처럼, 모두 '사랑'을 하지만 그 의미는 개개인에게는 다를 수 있나봅니다.

'4월 맑음', 제목부터 상큼한 느낌의 곡으로 가사나 연주나 역시 그렇습니다. 앞선 3곡이 좀 우중충한 곡들이라면, 이 곡은 제목처럼 맑고 행복한 느낌의 곡이죠. 연주는 실황녹음한 느낌이 나는데 아니라고 하네요.

'영하나비', 겨울잠에서 잘못 깨어난 나비의 노래입니다. 때를 잘못 만난 신세 한탄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나비는 추운 겨울에 깨었으니 잘못하면 얼어죽을 수도 있겠지만 곡은 흥겹게 흘러갑니다. 실로폰, 트라이앵글 같이 친근한 악기와 동요 '나비야'의 인용은 '나비'가 그리는 따뜻한 봄의 느낌입니다. 마지막에 가사가 완성된 문장이 아닌 점과 '나비야'의 끊김은, 결국 '나비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도가', '하도'의 조금은 우스운 '자기소개서'같은 곡입니다. 도입부에 목소리가 조금 상기된 느낌이 아쉽습니다. 가사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

'운명을 믿는다', 아마 이 앨범에서 가장 격정적인 곡이 아닌가 합니다. 도입부 기타 연주부터 빠른데다가, 보컬은 아슬아슬하게 고음을 오릅니다. 비교적 강한 느낌의 드럼도 긴장감을 더해 주고요. 공연에서 종종 보컬의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는 곡인데, 앨범에서는 무난하게 흘러가네요.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남녀가 지목하는 상대가 엇갈리듯, 엇갈린 운명의 수레바퀴가 아쉬울 따름입니다.

'너는 가끔 생각이 너무 많다', 보컬이 없는 연주곡으로 쉬어가는 느낌의 곡입니다.

'괜챠니스틱', 앨범에서 가장 재밌는 곡입니다. 재밌는 가사와 효과음들에 귀 기울여 보세요. 배경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다 '하도'가 녹음한 일인다역으로 생각됩니다. 제목처럼 '그까이꺼 대충~'만든 곡일지도 모릅니다.

'별가루 샤워', 늘어지는 느낌의 기타 연주와 보컬의 이펙트가 인상적인 곡입니다. 보컬이 이펙트는 정말 하늘에 뿌려지는, 셀 수 없이 많은 별가루의 느낌입니다. 평범해질 수 있는 곡을 범상하지 않게 한 '재치'가 뛰어났다고 할까요?

'우주비행사의 편지', 의지할 곳 없는 우주에서 불의의 사고로 조난을 당한 우주비행사의 노래입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아득히 멀어지는 푸른 점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이들에게 부치는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키보드의 울림의 아득해지는 느낌을 더합니다.

'화양연화', 첫곡 '첫차'와 함께 single에 수록되었던 곡입니다. '왕가위 감독'의 동명의 영화에서 빌려온 제목처럼 시리게 안타까운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single에 들어갔던 버전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기타 소리가 더 크고 맑아진 느낌입니다.

'동경소년', 역시 single 수록곡으로 연주곡이지만 의미없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끝부분을 자세히 들어보면 의미있는 목소리가 잠깐 들립니다.

'잘자요 좋은 꿈', 밤의 인사처럼 앨범의 마지막 곡입니다. 요즘 마지막 곡은 'Good Night'이 대세인가 봅니다. 코러스로 '그림자궁전'의 홍일점 'stellar'로 추측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짧고 깔끔한 마지막입니다.

녹음 후 한참이 지나서야 음반으로 나왔기에 아쉬움이 느껴지는 앨범입니다. '하도'의 목이 최상이 아닌 상황에서 녹음한 점도 아쉽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아쉬운 느낌 때문인지, 앨범의 컨셉으로 잡은 '옆집 가수'의 이미지는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또 공연을 통해 '하도'의 팬이 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에 충분합니다. 반대로 앨범을 듣고 공연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만큼, '하도'는 녹음과 발매 사이의 간격을 허비하지 않고 뮤지션으로서 성장해왔습니다. 그러한 성장은 앨범에 실리지 않은, 실릴 수 없었던 좋은 신곡들과 'stellar'와의 프로젝트 'interstellar'로 엿볼 수 있고 홍대 클럽에서 새롭게 찾아올 팬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홍대 클럽 '빵'에서 연상되었다는 가상의 공간, '우리의 6구역'. '하도'는 이 앨범을 통해 6구역에 사는, '소년적 감수성을 소유한 주인공'의 울고 웃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 가상의 인물은 '하도' 자신의 투영일 수도 있고, '하도'의 노래를 듣는 여러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소개된 '우리의 6구역' 전 곡은 '하도'의 싸이월드 클럽(http://gkeh.cyworld.com/)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006/11/02 23:42 2006/11/02 23:42

로로스(Loro's) - Scent of Orchid


온라인을 통해 발매가 시작된 제 8회'쌈지사운드페스티벌'의 '숨은고수', '로로스(Loro's)'의 single 'Scent of Orchid'. '데미안' 1집, '흐른' EP, '하도' 1집에 이어 'TuneTable Movement'에서 발표하는 네번째 작품.

뛰어나고 다양한 음악을 숨은고수 다섯 팀이었지만, 특히 '로로스'는 여느 밴드들과 다른 언더그라운드 씬에서는 '독특한 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보컬'과 '기타'가 밴드의 중심을 이루는 보통 밴드들과는 다른, '키보드'와 '첼로'를 전면에 내세운 밴드 구성부터 독특하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더 독특합니다. '키보드'가 중심이 된 사운드에 '첼로'의 선율이 가미된 '로로스'의 음악은 Rock이 아닌, 언더그라운드 씬에서는 희귀하다고 할 수 있는 'Cross-over'에 가깝습니다.

single 'Scent of Orchid'는 (아쉽게도) 총 세 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한 곡 한 곡 살펴보면,

첫번째, single의 타이틀 'Scent of Orchid'를 의미하는 곡인 '너의 오른쪽 안구에선 난초향이 나'는 '로로스'의 서정미을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사실 '로로스'의 곡들 중 절반 정도는 '서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single에 실리지 못한 '방안에서'와 'It's raining'도 서정미가 물씬 풍기는 곡으로 아마 '너의 오른쪽 안구에선 난초향이 나'와 single에 수록되기 위해 엄청난 경쟁을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키보드와 첼로의 선율과 드럼의 도움으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이 곡이 Newage 곡이 아닌가 하는 착각일 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키보디스트 '도재명'의 보컬은 그런 착각을 환기시킵니다. 보컬의 질감이 라이브 때와는 차이가 나는데, 마치 라디오로 듣는 듯하니 'Radio Edit'라고 해야하겠습니다. 드럼의 소리도 역시 라이브 때와는 차이가 느껴지는데 이어폰으로 들으면 아쉬운 느낌이지만, 스피커의 우퍼를 통해 들으면 또 다른 느낌입니다.

아쉬운 점은 곡이 절정에 오르고 첼로의 서정미가 극에 달하는 부분에서 정작 첼로의 소리가 크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 부분에서 첼로가 좀 더 앞으로 드러났다면 더 진한 감동을 가져다 주지 않을까 하는데, 혹시 데뷔 앨범을 위해 아껴둔 건 아니겠죠?

두번째는 '쌈사페'의 '숨은고수'로 응모할 때 공개되었던 '로로스의 시그널 송'이라고 할 만한, 'My Cute Gorilla'입니다. 리더 '도재명'의 공연 멘트 중에 세번째 'Habracadabrah'와 함께 희열이 느껴지는 곡이라고 했었는데 그래서 두 곡이 실리게 되었나 봅니다. '숨은고수'때 공개된 음원보다 깔끔해진 모습으로 찾아왔습니다.

어린 시절의 친구였던 '고릴라 인형'을 위한 만든 곡으로 가사에서도 그 고릴라에 대한 애정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가사는 소년이 고릴라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이지만 반대로, 낡은 고릴라 인형이 소년을 추억하는 곡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작은 고릴라(키보드)와 그 주위로 우아한 춤을 추는 발레리나(첼로)가 멤돌고, 뒤에서는 북치는 병정(드럼)과 나름대로 사뿐사뿐 걷는 코끼리와 곰(베이스), 그리고 고릴라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개구장이(기타)...이제 소년은 없는 작은 방 안에서 여러 인형들이 소년과의 즐거웠던 시간을 그리워하는 장면이 그려지네요.

세번째, 'Habrahcadabrah'는 'Cross-over 밴드 로로스'의 또 다른 취향을 보여주는 곡입니다. 앞 선 두곡이 '서정성'이 강하다면 이 곡에서는 '로로스'가 추구하는, 경계를 넘어선 음악의 광활함이 느껴집니다. 주문의 한 구절인 'Habrahcadabrah'로 시작되는 곡은, 점점 고조되면서 신비로운 모습을 더해 갑니다. 하지만 주문에 의한 것이 결국 모든 허상이듯,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고 말죠.

좋은 곡이 많기에 취향에 따라 이번 single의 선곡이 조금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정식 앨범이 아닌 single로서 로로스의 '음악적 취향'과 그들이 추구하는 '다양성'을 세상에 알리기에 탁월한 선곡이라고 생각됩니다.

밴드 '로로스'의 장점은, 멜로디와 리듬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 '키보드'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보통 밴드의 '리듬파트'를 담당하는 '베이스'와 '드럼'이 '리듬의 유지'라는 고유의 영역에서 자유로워진 데에서 나온다고 생각됩니다. 그 자유로움에 '베이스'와 '드럼'의 멜로디의 영역에 들어와 풍부하고 아름다운 사운드가 가능하게 되었죠.

하지만 라이브에서 느낄 수 있었던 절정에서의 '드럼'과 '첼로'의 '강렬함'이 single에서는 약해진 점은 참 아쉽습니다. 몇몇 부분에서의 악기 배치도 좀 아쉽구요. 그럼에도 '로로스'의 single 'Scent of Orchid'를 '올해의 필청(必聽) single'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single에서 생긴 이질감은 라이브에 대한 실망이 아닌 기대를 키우기에 충분합니다. 그만큼 '로로스'의 곡들은 탁월하고, 이 밴드의 라이브는 듣는 이를 압도하기에 충분합니다.

'Scent of Orchid'는 온라인에서는 독점으로 향뮤직(http://www.hmusic.co.kr/)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또 '로로스'의 공연이 열리는 클럽에서도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만, 수량이 많지 않으니 서둘러 주세요.

* 티스토리 블로그 (http://bluo.tistory.com/)에서 '너의 오른쪽 안구에선 난초향이 나'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006/11/02 02:20 2006/11/02 02:20

그리고 소년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W'의 'Where the story ends'



'대중음악' 혹은 '주류음악', 속칭 '가요계'에서 중고신인이라고 할 수 있는 'Where the story ends'가 'W'로 개명하고 2005년 발매 앨범 'Where the story ends'. 길었던 밴드 이름의 의미 '이야기가 끝나는 곳' 은 대부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의 마지막에 자주 쓰이는 어구라고 한다.

'사랑 노래'가 대부분 아니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가요계'에 노골적인 '사랑 노래'도 없이 도전장을 던진 'W'는 정말 제정신이 아닌 밴드일지도 모르겠다.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스타'가 가요계를 점령한 상황에서 대중성과 음악성을 모두 만족시키고, '스타 작곡가'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뮤지션에 의한, 뮤지션이 하고픈' 음악을 들려주는 ('W'의 현 소속사이기도 한) '플럭서스 뮤직'의 다른 밴드들 조차도 사랑 이야기가 주류거나 아예 '사랑'을 이름으로 한 밴드도 있는 상황이니...

잡설이 길어졌다. 이 앨범 'Where the story ends'가 들려주는, 흔하지 않은 '소년'의 이야기를 짧게 해볼까한다.

앨범 첫곡부터 '소년세계' 제목부터 소년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고 가사를 들어본다면 면도를 잊은 '수염'과 시큼한 '암내'까지도 빼먹지 않는 '소년 예찬곡'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렷한 콧날 거뭇한 수염 소년
투명한 숨결 시큼한 향기 소년

기억해다오
윤기 없는 삶에 찌든 채로
이 세상에 길들여진 채로
그저 시시한 어른이 된 후에라도


잠깐 가요계에서 '소년'의 입지를 '소녀'와 비교해서 살펴보면, 대표적인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두 곡에서 '소년'과 '소녀'라는 키워드로 곡 제목을 검색해본 결과 두 사이트에서 모두 '소녀'쪽이 약 2배에 가까운 검색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소년'은 가요계에서 비선호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마나 다행인 점은 아저씨에 비해서는 좋은 처지였다는 점이었다. '아저씨'와 '아가씨'를 비교 검색해본 결과 '아가씨' 쪽이 약 4배에 달했다. 지방 각지의 '아가씨'를 보유하고 있는 가요계에서의 '아가씨'의 입지와는 달리, '아저씨' 검색결과는 대부분은 동요였다.

'W'는 '소년 찬양'에 그치지 않고 소년에게 용기를 북돋기 위한 dancable한 'Everybody Wants You'를 배치하고 있다.

Boy meets girl, and Girl meets boy, 끝없는 이야기들
마음껏, 내 기운껏, 그래 뭐, 그 까짓 것
Dancing Queen, Dancing Jive, 완벽한 Disco guide
보이니? 너 들리니? 이렇게 Everybody wants you!


마치 영화 속에서 보이는 70년대 즈음의 '로라장'에서 들려도 어색하지 않을 법한 '소년 응원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은하철도 999'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은하철도의 밤'. 아마 소년의 로망을 위한 곡이 아닐까? 사실 '은하철도의 밤'은 일본의 동화로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이 동화에서 소년 '조반니'는 유일한 친구 '캄파넬라'와 함께 마젤란 은하행 은하철도를 타고 우주 곳곳을 여행하게 된다. 그 사실은 가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스쳐가는 만남과 또 이별의 추억으로
빛나는 은빛 별들의 바다

마젤란 은하행 열차
푸른 달의 뒤편을 지나

나의 친구 캄파넬라
너의 마음을 잊지 않을게


은하철도를 타고 우주여행, 아마 소년시절 누구나 꿈꾸어 보았을 우주비행사에 대한 철 없던 '소년의 꿈과 로망'을 위한 또다른 찬양가라고 하겠다. 하지만 'W'는 단지 '꿈같은 소년 시절'에만 안주하지 않고 '소년의 성장'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다. 조금 엉뚱한 제목일 수도 있겠지만 '푸른비늘'을 살펴보자.

뛰는 너의 심장은 강철 아가미
여린 너의 솜털은 푸른 비늘로

다시 빛나기 시작해
이제 너는 돌아가네

푸른 너의 바다로 고운 달빛 아래 하얀 거품으로
흩어지는 너의 모습


'성장'을 내포한 가사는 결국 가족과 친구, 학교 등 작은 세상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성장해야하는 소년의 운명을 비유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곡, 제목부터 어른도 아이도 아닌 존재가 된 소년 즉, '경계인'으로 소년에게 마지막 충고를 하고 있다.

나의 눈은 밝고 나의 귀는 항상 세상을 향해 열려 있으니
불안하지 않아 두렵지도 않아 언제나처럼 바람이 부는
이 곳에서

나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는 바로 그 길을 선택했으니
때론 끌어안고 때론 구별하며 나의 진심과 나의 균형을
노래할 수 있는 자유

지루한 다툼 차가운 그늘 속에도
나의 진실은 여기 맴돌고 있으니

이젠 사라지길 부디 그러하길 너의 이름과 너의 기억들
다시 보게 되길 나를 달래주던 제주의 바다 또 빛의 대지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W'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소년'은 다른 누구가 아닌 바로 'W'의 멤버들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이 앨범은 나이든 소년이 나이들 소년에게 보내는, 소년이 소년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닐까? 소년의 마음으로 들려주는 노래들, 가요계에서 종종 이야기되는 소녀적 감수성에 빗대어, '소년적 감수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2006/09/22 01:08 2006/09/22 01:08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 입술이 달빛



2005년 가장 조용한 음악으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던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2집 '입술이 달빛'이 1집 발매 후 약 20개월 만에 발표되었습니다. 2집에서는 성인가요를 소비하는 장년층까지 팬으로 흡수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숨어있는 듯합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빠져들 만한 '동요'에서의 착안과 '성인가요 특유의 뽕끼리듬'를 차용하여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인디씬의 대표 레이블이 되어가고 있는 '파스텔뮤직'과 한국 음반 시장에 떠오르는 강자 'CJ뮤직'이 손잡아서 발매되는 앨범인 만큼, 앨범 케이스에서도 신경쓴 흔적이 보입니다. 사진과 디자인을 유명작가 '김중만'씨와 '김점선'씨가 맡았다니 1집의 성공이 얼마나 놀랄 만한 것이었나 알 수 있게 합니다. 하지만 1집과 마찬가지로 종이 사이로 CD를 끼워넣어 수납하는 방식은, 스크레치가 생기기 쉽기에, 아쉽습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DIgi-pak 1집은 재판입니다.) 1집의 신비주의 전략을 버리고 성급히(?) 얼굴을 드러낸 점도 좀 아쉽기는 하지만, 32페이지에 달하는 가사집 겸 화보집은 왠만한 유명가수의 그것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좋습니다.

'고양이 소야곡', 첫곡부터 '쿵짝 쿵짝 쿵짜자 쿵짝'의 뽕끼리듬을 노골적으로 들려줍니다. 시대극에서 배경음악으로 들을 법한, 기타와 베이스의 뽕끼리듬과 하모니카의 조합은 소위 말하는 '신파'가 떠오르기에 충분합니다. 베이스 리듬이 고양이의 '발걸음'이라면 하모니카는 고양이의 '고독한 심정'이라고 하겠습니다. 달이 밝은 창가는 산책하는, 홀로 쓸쓸하면서도 우아한 고양이를 위한 곡입니다.

'슬픈 사랑 노래', 도입부에 '아~ 슬프도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남녀상열지사'라는 연사의 멘트가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을 제목 그대로 '슬픈 사랑 노래'입니다. 1집의 'So Good-Bye'의 연장선에 있다고도 볼 수는 곡으로, 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생각되는 슬픈 가사는 단촐한 연주로 쓸쓸한 느낌이 더해집니다. 'So Good-bye'가 '돌아선 쓸쓸한 발걸음'이라면, '슬픈 사랑 노래'는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치는 가슴'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수차례 공연을 통해 이 곡을 들어 오면서, 피아노 솔로가 들어갔다면 더욱 눈물샘을 자극할 만한 '신파'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고양이 소야곡'이 들어내놓고 '뽕끼'를 표현한다면, 이곡은 살짝 숨겨두고 있네요.

'오직 지금은 너만', 밴드의 리더 김민홍이 보컬까지 들려주는, 포크팝을 가장한 뽕끼, 혹은 '뽕끼팝'이라고 해야하겠습니다. 아니, 앨범 수록곡들 전부 지향점은 '뽕끼팝'일지도 모릅니다.

'입술이 달빛', 처음에는 후렴구에 들어가는 가사인 '띠뚜떼'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었던 곡으로 흥겨운 연주와 새침한 보컬과 어우러지면서 뽕끼리듬이 '팝'으로 재탄생하게 되는 곡입니다. 앨범 타이틀로까지 선정된 만큼, '슬픈 사랑의 노래'와 함께 앨범 수록곡들 중 인기 순위 1, 2위를 다투지 않을까합니다.

'사랑', 조용한 사랑 노래입니다. '사랑'과 '해요'만으로 이루어진 가사가 닭살스러울 수도 있지만 닭살스럽지 않게 전달하는 솜씨, 1집의 'Lalala'처럼 자연스럽다고 할까요. 하지만 1집과는 달리 '사랑 타령' 노래가 많아진 점은 조금은 거북스럽기도 합니다. '도'라 말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듯,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겠건만...

'또 돌아보고', 도입부의 반복적인 가사와 김민홍의 음침한 보컬이 어쩐지 '아마추어 증폭기'의 곡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게 하는 곡입니다. dancable한 뽕끼 비트(?)와 김민홍의 '트롯' 한 소절은 '장윤정을 위시한 젊은 트롯 가수 대열에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도 본격적으로 합류하겠다는 야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조금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가 생각나기도 하구요.

'겁쟁이', 그나마 뽕끼리듬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꽃'과 '칼'로 사랑의 '아름다움'과 '잔인함'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두꺼비', 앨범 수록곡들 중 가장 신나는 곡으로 어린 시절 모래판에서 하곤 했던 '두꺼비집 놀이(?)'에서 착안한 흥겨운 곡입니다. 중간중간의 느끼한 '민홍'의 코러스는 그야말로 두꺼비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합니다. 공연에서 들었을 때보다는 차분한 느낌입니다. 공연에서 이 곡을 듣게 된다면, 관객과 호흡하는 '뚜껍아 뚜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를 외치며 더 빠르고 더 흥겨운 '두꺼비'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될 것입니다. 삼인자 자리를 놓고 '두꺼비'의 '고양이'와의 치열한 격전이 예상됩니다.

공식적인 마지막 곡 '파티', 점점 풍성해지는 코러스와 청아한 트라이앵글이 앨범을 닫는 곡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9곡 밖에 되지 않는 정식 수록곡들에 대한 보상인 듯, 'bonus track'이 무려 5곡이나 들어있습니다. 정식 수록곡들은 '새발의 피'일 정도로 '사랑타령'인 곡들이 껴있는 점으로 볼 때, 지나친 사랑타령에 대한 반발을 조금이나 무마하려는 안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5곡 모두 단촐한 어쿠스틱한 느낌입니다.

'사랑을 하다', '오직 지금 너만'보다 '연애의 단계'가 더 발전한 형태의 곡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랑 시소 버전', 연주는 동일하지만 높아진 음의 보컬과 보컬과 미묘한 음의 차이를 둔 코러스때문에 '시소 버전'이라고 붙었나 봅니다.

'두꺼비 어쿠스틱 버전', 연주로 단촐한 기타 소리만을 들을 수 있는, 본래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모습에 가까운 곡이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어쿠스틱 공연을 위해 준비한 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원곡의 느끼한 '두꺼비'를 듣다 여성 '두꺼비'를 들으니 오히려 '개구리'라고 해야 옳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어쿠스틱 버전으로 들으니 '두꺼비'와 진행이 상당히 비슷한 느낌입니다. 중간에 두 곡 사이에서 슬쩍 넘어가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소중히 감싸네~ 두껍아'로 진행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법합니다.

'입술이 달빛 어쿠스틱 버전', 원곡에서 상당히 경쾌한 곡을 어쿠스틱 버전으로 들으니 또 다른 느낌입니다.

'내 사랑 그대여', 제대로 노골적인 제목의 곡입니다. 솔로 청취자들은 이 즈음 왔으면 중간에 첫 곡이나 두번째 곡으로 되돌아 가지 않을까 합니다.

1집의 '기대 이상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새앨범 수록곡 전곡에서 뽕끼리듬을 차용하면서 '뽕끼의 재해석'과 '재탄생'이라는 대단할 수도 혹은 무모할 수도 있는 도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다운 색깔을 유지한, '안정 속의 변화'로 기존 팬들에게는 이질감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지지 기반을 넓혀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1집이 젊은 이들이 선호할 만한 '정갈한 정식'이었다면 2집은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구수한 우리음식을 응용한 퓨전요리'라고 하고 싶네요. '영어 가사'의 곡이 많았던 1집과는 달리 전곡이 '한글 가사'인 점도 2집에서의 변화와 그 변화의 의도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이제 이 밴드의 도전이 대단했느냐 혹은 무모했느냐는, 이제 이들의 음반을 듣는 이들에 귀에 달렸습니다.

가을의 입구에 그들의 2집, 그것은 2년전 겨울의 중턱에 발매되었던 1집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입니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음악이 회색빛과 하늘빛 사이, 그 어느 지점에 있다면 1집이 회색빛에 가까웠다면 2집은 하늘빛에 가까워졌다고 할까요? '고양이 소야곡', '슬픈 사랑 노래' 투톱을 시작으로 중간계투에 '입술이 달빛', 마무리에는 '두꺼비'같은 중독성을 발휘할 만한 곡들을 비치하여 정식 수록곡들 중 Skip 버튼을 누를 겨를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더구나 서운하지 않을 정도의 bonus track 연장전으로 상당히 괜찮은 앨범의 구색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려했던 '소포모어 징크스'를 극복했다고 성급하게 결론내리고 싶네요. 라이브로도 앨범에서 들었던 느낌들을 고스란히 가져가면서 더 큰 즐거움을 즐길 수 있기에, 별점은 4.5개입니다. 과연 1집의 '나비효과'에 이은 또 다른 '나비효과'를 보여줄 수 있을지요.

리뷰가 상당히 길어졌네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6/09/20 20:52 2006/09/20 20:52

에레나(Elena) - Say Hello to Every Summer



에레나(Elena)의 솔로 데뷔 앨범 'Say Hello to Every Summer'.

이 앨범을 구입하기 전까지 '에레나'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는 밴드 '코스모스'의 키보디스트였다는 점 뿐이었고, 홍보를 담당하는 '해피로봇'의 블로그를 통해 앨범에 'Espionne'가 참여한 점과 '밤, 테라스'를 들어본 것이 전부였습니다. 새로운 음악에 목말랐던 귀에 '밤, 테라스'는 신선한 느낌이었고 '키보디스트의 솔로 앨범'이라는 점이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여름이 끝나가는 마당에 'Say Hello to Every Summer'라는 여름을 노린 듯한 앨범 제목도 끌렸구요.

앨범 타이틀과 동일한 제목의 첫곡 'Say Hello to Every Summer', 도입부의 진행이 90년대 가요에서 들어보았을 법한 익숙함이 느껴지면서도, 늘어지는 여름에 활기를 불어넣을 만큼 신선함이 느껴지는 곡입니다. 앨범 첫곡으로 탁월한 선택이죠.

이어지는, 제목부터 신나는 '입맞춤의 Swing', 톡톡 튀는 보컬과 어여쁜 코러스의 조화, 보컬만큼이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키보드와 간간히 달리는 드럼의 조화가 상큼함을 발산하는 곡입니다.

'Holidaymaker', 앞선 두 곡과는 다른 에레나의 보컬의 변화무쌍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첫 곡이 '따뜻함', 두번째가 '상큼함'이라면, 'Holidaymaker'는 '경쾌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도시를 떠나, 한 손에는 큼지막한 가방 하나와 다른 한 손에는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초록이 신선한 자연으로 여행을... 보사노바라는 장르의 특징인 듯, 도입부의 리듬이 '소히'의 '앵두'와 비슷하네요.

Interude라고 할 수 있는 '1-2-3-4-5 Carrot', 재치를 느낄 만한 곡입니다.

'물빛의 여름'은 제목과는 달리 조금은 건조한 느낌의 보컬 덕분에 경쾌한 느낌의 연주가 두드러지는 곡으로 끝나가는 여름의 조금은 슬프지만, 단지 슬프지만은 않은 꿈이야기...

'촛불의 미로', 반복되는 코러스가 헤어나올 수 없는 미로를, 조용한 노래는 촛불의 엄숙함을 떠오르게 합니다.

'Lens Flare', 수록곡들 중 가장 강력한 연주와 발랄한 가사는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의 느낌입니다.

'토끼구름', 앞선 '1-2-3-4-5 Carrot'에서 당근을 보여주었으니 이제 토끼가 등장할 차례인가 봅니다. 당근바다에 빠진 꿈을 꾸는, 행복한 가을의 토끼를 떠올려보는 것도 좋을 듯...

'밤, 테라스', 매혹적인 보컬에 낭만적인 연주와 가사가 가미된, 너무나 매력적인 곡입니다. 이 곡만 듣고 제가 앨범을 구입했을 정도로 좋아요. 달빛이 운치있는 밤, 경치가 멋진 테라스에서 사랑하는 이와 가벼운 춤을 추며...

'하얀색 행진곡', 경쾌한 피아노 연주와 나즈막한 보컬과 함께 시작되는 역시 너무나 멋진 곡입니다. 듣고 있으면 아련하고 막연한 그리움이 모락모락 피어납니다. 하얀 강아지, 하얀 고양이, 하얀 토끼, 하얀 원피스의 소녀... 잠자리채를 어깨에 걸치고 하얀 행진을...

'밤이 듣는다', 이야기를 주고 받는 듯한 보컬과 코러스의 배치가 멋진 곡입니다. '밤'과의 속삭이는 수다, 쏟아지는 잠, 꿈결의 그리운 목소리...

'Good Night Sweet Heart', '밤이 듣는다'에 이어 '밤'에 대한 곡이자 제목처럼 마지막 곡입니다. 다음 앨범으로 만날 때까지... 좋은 밤!

전체적으로 어느 한 곡도 그냥 건너뛰기 힘들 정도로 멋진 앨범입니다. 부클릿에서 많이 보이는 이름, 바로 'Espionne'에게 주목해야 해야겠습니다. 12곡 중 절반이 넘는 9곡에 programing 등으로 참여하면서, 그의 숨결이 '구태의연'해질 수도 있는 곡들을 멋들어지게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됩니다. 뮤지션의 뛰어난 연주 능력이나 작곡 능력 뿐만 아닌라, 좋은 앨범을 만드는데 핵심적 요소는 좋은 프로듀서를 만나는 것인데, '에레나'와 그녀의 앨범은 그 부분에서도 성공한 듯합니다.

달력으로는 가을이 되었지만 아직도 여름의 열기가 남아있는 요즘, 밤이 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도 마음은 편하지 많은 요즘, 일상에 활기를 북돋아주는 상큼한 양념같은 '에레나'의 앨범과 함께하는 것은 어떨까요? 별점은 4개입니다.
2006/09/14 23:19 2006/09/14 23:19

흐른 - 몽유병(EP)



'TuneTable Movement'의 두번째 결과물 '흐른'의 EP '몽유병'. 편안한 멜로디와 솔직담백한 가사가 매력적인 흐른의 곡들을 이제 조용한 방에서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별 후의 감정을 담담하게 노래한 '거짓말'. '사탕'의 비유나 '쉬어버린 밥', '어김없이 오는 아침' 등 생활에 가까운 소재들로 풀어나가는 가사가 많은 생각을 하게합니다. 연주에서는 어렴풋이 '1집의 푸른새벽' 느낌이 나는 점도 있습니다.

문답 형식의 재치있는 가사가 매력적인 '몽유병'. 우리말의 '적당히'만큼이나 모호한 단어인 '평범', 이 단어에 의미를 반문하는 부분에서 '흐른'의 삶에 대한 성찰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화창한 날의 애수(哀愁)'를 노래하는 '버스'. 보컬이 너무 밋밋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 밋밋함이 바로 흐른의 매력이 아닌가 합니다. '애수'라고 표현했지만 연주는 EP의 다른 수록곡들보다도 경쾌합니다. 하지만 덜컹거리는 버스 안의 심정은 그리 경쾌하지만은 않네요.

조금은 노골적인(?) 제목의 '몸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내용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록곡들 중 연주가 가장 아름다운 곡이기도 합니다. 키보드와 오르간과 기타의 어울림지 참 멋집니다.

가장 화려한 연주의 '스물일곱'. '나이듦'에 대한 성찰이 느껴지는 가사도 참 매력적인데 '이미 시작된 축제'라는 부분에서는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관련은 없답니다.) '흐른' 공연에서 보기 힘든, 힘찬 '밴드 사운드'지만 보컬에서 '약간의 기교'가 아쉽습니다. 후렴구 부분의 일렉트릭 기타의 긴장김을 밋밋함으로 일관하는 보컬이 받쳐주지 못하는 느낌이랄까요.

마지막 '2003. 12. 28. am 5:00'은 짧은 소절이 반복되는 연주곡으로, 조금은 음산하게 느껴질 수 있는 코러스 때문에 자꾸 듣고 싶어지네요.

'여성해방'이 또 하나의 화두가 된 21세기에,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여성들이 무척 공감할 흐른의 곡들(실제 '흐른'의 EP 발매 공연에서 여성이 대부분이었습니다.)이지만, 단순히 특정 성별이나 연령대에 구속되지 않는 '삶'과 '사랑' 그리고 '나이듦'에 대해 한 번 쯤 생각해본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보편성'이 뭍어나는 EP입니다.
2006/08/11 15:46 2006/08/11 15:46

I Love J.H - I Love JH



뒤늦게 쓰는 'I Love J.H'의 Self-titled debut album 'I Love JH'의 리뷰입니다. 밴드 이름 표기에서 J와 H사이에 들어가는 '.'때문에 개인적으로 고민이 있었습니다. 2004년 발매된 Demo에서는 'I Love J.H'로 표기되었다가 앨범에서는 'I Love JH'로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여기서는 밴드명은 'I Love J.H'로 표기하고 앨범명은 'I Love JH'로 표기합니다.

앨범 'I Love JH'는 총 11 track에 숨겨진 곡까지 합해 12곡으로 적지 않은 수이지만 총 러닝타임은 40분이 되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밴드의 곡들이 길지 않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함량미달'의 앨범은 아닙니다.

기본적인 4인조 Rock 밴드의 포메이션으로 충실한 기본기를 들려줍니다. 각종 이펙트와 스트링으로 중무장한 앨범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앨범 'I Love JH'는 이 밴드의 '무기교의 기교'를 보여주는 앨범이 아닌가 합니다. 보컬&기타 이지영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 기타&코러스 김나은, 베이스 장태순, 드럼 노정욱은 ('I Love J.H'가 들려주는 조금은 말랑말랑한 느낌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수 있지만) Hardcore 씬에서 활약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기본기에 충실하면서 탄탄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실제로 보컬의 말랑말랑한 느낌의 곡에서도 연주들에서는 무게감을 느낄 수 있고, 실제로 드럼은 '달린다'라고 표현해야 할 곡도 있습니다.

'Come into My Room'은 'I Love J.H'의 클럽 공연에서도 자주 오프닝 곡으로 사용되었던 곡입니다. 곡의 제목처럼 여러분은' 한 친구(소녀)의 방에 초대되었다'는 느낌으로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톡톡 튀는 가사와 함께 시작되는 경쾌한 곡입니다. 앨범의 첫곡을 중요시 하는 저의 취향에서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어지는 곡들에서 그 소녀의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수록곡 중 라이브의 느낌이 많이 살아있는 곡이기도 한데, 라이브에 비하면 보컬의 절제가 조금은 느껴집니다.

'Jenny'는 Jenny라는 여자아이에 대한 질투가 담긴 곡입니다.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가사(특히 후렴구 'Jenny's happy, you are happy And I am so so sad')가 재밌습니다.

'Billijo'는 여자아이의 이름인데, 보컬 이지영의 동생이 좋아하던 여자아이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동생의 고민을 듣고 만든 곡이랍이다.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듣는 소년의 수줍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Smile'은 참 재밌는 곡입니다. 라이브에서 보컬의 삑사리(?)가 자주 일어났던 곡인데 녹음은 무사히 되었네요. 보컬 이지영의 공연에서 자주 하던 말을 빌리자면 '베이스 라인이 이쁜' 곡입니다.

'I Love You'는 보컬 이지영의 과거 취향(?)이 담긴 곡이랍니다. 그 취향이 어쨌던 그 취향 덕분에 상당히 멋진 곡이 탄생했습니다. 짝사랑에 빠져 방황하는 소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만, 가사의 마지막처럼 그 짝사랑이 희망적이지는 않습니다. 비단 소녀의 마음만이 그런 것은 아닐겁니다. 짝사랑에 빠진 모든 사람의 마음이, 더욱이 이루기 힘든 것이라면 그러하지 않을까합니다. 절도있고 힘이 느껴지는 베이스와 드럼의 연주가 매력입니다. 2분~3분 사이였던 앞의 4곡과는 달리 이 앨범에서 처음으로 3분이 넘는 곡이고, 그 만큼 가사도 깁니다.

'No Job'은 SIngle로 언제 공개되었던 곡으로, 경쾌하면서도 희망찬 느낌의 곡입니다. 라이브에서의 거친 느낌이 감소하여서 아쉽기도 하지만, 힘찬 연주와 아름다운 코러스가 매력적인 곡입니다. 가사도 희망적으로 취업에 대한 강한 열망을 느낄 수가 있는데, 보컬 이지영이 대학 졸업 후 공허한 마음에 쓴 곡이랍니다.

'Don't Ask Me the Truth'는 라이브가 인상적인 곡인데, 열올리는 베이시스트를 볼 수 있는 곡입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보컬의 믹스가 참 마음에 드는 곡으로 라이브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새로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Today'는 'I Love J.H'의 최고 인기곡이자 대표곡이라고 할 만한 곡입니다. 군대가는 친구들을 보며 만든 곡이라는데, 상당히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Demo 'Hi! We are I Love J.H'에 수록되었던 곡으로 홍대에서 활약하는 여러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린 곡입니다. Demo와 비교해서 들으면 많이 다듬어진 보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질주하는 연주에서 이 밴드의 연주 실력과 저력을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라이브로 보면 드러머는 정말 날고 있고 이 곡을 마치면 녹초가 될 듯합니다.

'Rock My World'는 'I Love You'와 더불어 서정적이면서도 강렬한 연주가 인상적인 곡입니다. 그 강렬함 때문에 더욱 슬픔이 느껴지는 곡이기도 합니다.

'Passing by'도 Demo에 수록되었던 곡으로 타이트하게 흘러가던 앞선 곡들과는 다르게 조금은 느슨한 느낌의 '락발라드풍' 곡입니다.떠나가는 사랑에 대한 아쉬움이 뭍어나는 가사도 인상적입니다.

'Oh My Darling'은 'No Job'과 함께 Single에 수록되었던 곡으로 공식적인 이 앨범의 마지막 곡입니다. 방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 소녀가 지나간 사랑에 대해 미안함과 이별을 고하는 곡입니다. 그리고 숨겨진 acoustic한 느낌의 'Waiting for the Answer'가 뒷부분에 담겨있습니다.

밴드 'I Love J.H'는 앨범 발매 후 멤버들의 사정으로 공연을 못하고 있지만 인디씬에서 이대로 사라지기에는 아쉬움이 많은 앨범입니다. 특별한 기교 없이 탄탄한 기본기만으로 상당한 완성도를 들려주는 '무기교의 기교'가 더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별점은 4.5개입니다.
2006/07/29 13:53 2006/07/29 1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