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텔뮤직표 캐롤 앨범 'Merry Lonel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전격 발매!
파스텔뮤직은 우리나라 인디레이블 가운데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많은 소속 뮤지션을 보유한 레이블로, 인디대표 레이블이라고 할 만큼 2006년 발매된 'Cracker'를 시작으로 여러 컴필레이션 앨범들을 발매해왔습니다. 하지만 파스텔뮤직의 컴필레이션 앨범이 특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소속 뮤지션들의 히트곡을 모아서 울궈먹기식의 컴필레이션이 아닌, 향후 발매될 앨범에 수록될 신곡 뿐만 아니라 앨범에 실리지 않은 미발표곡이나 컴필레이션 앨범만을 위한 특별한 신곡들까지 수록하여 샘플러 이상의 가치를 보장 때문입니다. 하지마 레이블 설립 후 수년이 지났음에도, 연말이 되면 레이블 입장에서는 '연말 대목(혹은 수금?)' 등등의 의미로, 혹은 팬 입장에서는 누구나 기대할 만한 그 흔한 '캐롤 앨범' 한 장 발매하지 않는 점은 의문이었습니다. 오래전 친분이 있는 파스텔뮤직 관계자에게 캐롤 앨범 계획에 대해 문의했지만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식의 답변 뿐이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특정 종교적 의미를 담은 Christmas라는 용어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하여 Holiday라는 단어로 대체해 사용하고 있고, 여러 고대 문헌상 12월 25일은 원해 태양신의 탄생을 위한 축제일이었지만 크리스트교에서 유일신 사상을 위해 차용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있습니다. 이렇게 최근에는 크리스마스의 종교적 의미가 여러 이유에서 퇴색되어가는 경향이고, 그와 더불어 예수 탄생을 축하하던 캐롤도 대중가요 정도의 의미가 된 상황이지만, 그래도 연말 연시하면 떠오르는 노래들은 역시 캐롤이 아닌가합니다. 그리고 파스텔뮤직에서 2010년에는 무슨 새로운 결심을 해서 2011년을 준비하려는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캐롤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캐롤 앨범'하면 응당 흥청망청하는 우리 대중문화의 연말연시 이미지와 맞물려 그냥저냥 흥겨운 크리스마스 음악을 떠올리겠지만, 파스텔뮤직표 크리스마스 음악은 파스텔뮤직표 컴필레이션 앨범인 만큼 컨셉부터가 다릅니다. 좀 장황해서 말이 어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가슴으로 이해되는 '여전히 서툴고 외로운 어른들을 위한, 해피엔딩이 아니어도 아름다운 겨울동화'를 표방하고 있죠. 우선 앨범을 꾸며주는 일러스트부터 그렇습니다. 눈이 내리는 숲 속에 붉은 리본을 한 여우 한 마리가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 홀로 서있습니다. 그만 가엽게도 놀아줄 친구가 없는지 외롭게도 두리번 거리면서요. 그런데 여우가 그냥 여우가 아닙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추운 곳에 서식하는 여우와 다르게 귀가 큰 것이 분명 '사막여우'네요. '눈 내리는 숲 속에 왠 사막여우?'라고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들이 많겠네요. 하지만 거기에 현명한 안배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눈 내리는 숲 속의 사막여우는 바로 '서툴고 외로운 어른들'을 대변하는 존재가 아닐까요? 뜨거운 사막에 살던 사막여우가 이렇게나 추운 숲 속에 홀로 있으니 얼마나 어색하고 외롭울까요.
총 16트랙으로 한 장에 CD에 꽉꽉 눌러 담기에 충분할 수도 있겠지만, 2CD라는 호화사양으로 발매된 'Merry Lonel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간단히 살펴보죠.
첫 트랙, 너무 유명한 캐롤 'The First Noel'은 후속 앨범의 소식이 궁금한 , '센티멘탈 시너리(Sentimental Scenery)'가 들려줍니다. 센티멘탈 시너리의 특기인 서정성과 더불어 탄생의 신비함을 잘 표현하고 있네요. 'I hate Christmas parties'는 1997년에 미국에서 결성된 'Relient K'의 곡으로 원곡 만큼이나 낯선 'Hee Young'이 들려줍니다. 파스텔뮤직의 새로운 얼굴인가? 이별 후 홀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바라보며 보내는, 크리스마스의 쓸쓸함을 진솔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Redribbon Foxes'는 앨범을 꾸며주는 일러스트의 모티브가 된 '붉은 리본을 단 여우'의 쓸쓸한 동화입니다. 원곡은 'A Fine Frenzy'가 2009년 크리스마스 특별앨범을 위해 불렀고 파스텔뮤직의 떠오르는 신예 '심규선'이 다시 부릅니다. 긴장 가득한 기타 선율부터 허스키한 목소리까지 원곡과 너무나도 똑같이 들려주는 소리들은 감탄스럽습니다. 눈으로 덮인 벌판에 부는 칼바람처럼 쓸쓸한 울림의 허밍은 압권입니다. 다음곡은 1944년에 쓰여졌고 수 많은 버전이 존재하지만, '프랭크 시나트라'가 불러서 유명한 곡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로 '캐스커'의 '융진'이 들려줍니다. 최근 새앨범에서 작곡으로도 참여하여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자질을 발휘하는 그녀인데, 탁월한 보컬리스트로서의 매력도 잊지 않고 들려주네요. 멋들어지게 불러야할 법한 곡인데, 다정함을 담은 그녀의 목소리도 잘 어울립니다.
'George and Andrew'는 영국 밴드 'The Boy Least Likely To'의 노래입니다. 원래 이 밴드의 크리스마스 앨범 'Christmas Special'에 수록된 곡으로 2010년에 파스텔뮤직을 통해 이 앨범이 국내에도 소개되었죠. 아담한 실로폰 연주와 함께, 'Wham'의 너무나도 유명한 'Last Christmas'만큼이나 흥겹습니다. 유명한 'Oh Happy Day'는 '어른아이'가 부릅니다. 경쾌한 이 곡이 경쾌함과는 거리가 있는 어른아이의 목소리로 들으니 조용한 기도처럼 경건함이 느껴지네요. 원곡은 18세기 찬송가를 1967년에 편곡하여 현재의 형태를 갖추었다네요.
'왜 내게 묻지 않나요? 사량하냐고'는 제목처럼 독특한 이름의 '수미아라 & 뽄스뚜베르'가 들려줍니다. 파스텔뮤직의 새로운 가족인지 정체도 알 수 없지만 노래 제목만큼 이름도 독특하네요. 이 앨범에서 유일한 우리말 노래이기도 한데 합창으로 들려주는 노래를 들어보면 긴 이름처럼 멤버도 많은가 봅니다. CD 1의 마지막 곡은 스페인어로 'Merry Christmas'를 의미한다는 'Feliz Navidad'입니다. 역시 유명한 캐롤로 1970년에 발표되었고, 보통 흥겹게 불려지는데 '이진우'는 나긋나긋 느끼하면서도 포근하게 들려줍니다. 여성팬들 좀 끌어모으겠어요.
CD 2는 '홍대 여신' '한희정'의 목소리로 시작합니다. 그녀가 들려주는 곡은 1948년에 쓰여진 컨트리 넘버 'Blue Christmas'로 제목만큼이나 우울한 크리스마스를 노래합니다. 그대는 white christmas를 보내지만 나는 blue christmas를 보낸다는 비유가 너무나 인상적입니다. 그녀의 '리즈시절'인 '푸른새벽' 즈음의 분위기가 다시 발산되는 느낌이네요. 역시 신예인 '헤르쯔 아날로그'는 유명한 '겨울 노래'인 'Winter Wonderland'를 들려줍니다. 1934년에 쓰여진 이 곡은 무려 150명이 넘는 가수들이 앨범을 통해 발표했다네요. 1인 프로젝트로 알고 있는 '헤르쯔 아날로그'인데 '브라운 아이드 소울'에 버금가는, 멋진 화음을 들려주니 정체가 궁금해지네요.
또 다른 '홍대 여신' '타루'는 유명한 캐롤이 아닌, '팀 버튼' 감독의 크리스마스 판타지인 영화 '크리스마스 악몽'에 삽입된 'Sally's Song'을 선택했습니다. 메마르고 거친 그녀의 음성은 당장 영화에 삽입되어도 매우 잘 어울릴 만큼 비참함을 잘 표현하고 있네요. '우물 가서 숭늉 찾는다'라는 속담이 생각나는 'Dreaming of White Christmas (in Summer Days)'는 신예 '트램폴린'이 들려줍니다. (이 곡은 원곡을 찾을 수 없네요.) 매력적인 여성의 보컬과 어우러진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향후 행보와 공연이 상당히 기대되네요.
컴필레이션 '사랑의 단상'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박준혁'은 'What Child is This'라는 곡을 들려줍니다. 무려 1865년에 쓰여진 이 곡은, 원작자가 거의 죽을 뻔한 경험을 겪은 후 쓴 여러 찬송가들 가운데 하나라네요. 제목만 들으면 '이 아이들은 다 뭐야!', 이런 느낌으로 상당히 염세적인 제목같네요. 역시 오랜만인 '불싸조'는 'Somewhere in My Memory'를 들려줍니다. 낯선 제목이겠지만 몇년 전까지 크리스마스를 달궈주던, 너무나 친근한 영화 '나 홀로 집에'의 메인 타이틀이 바로 이 곡입니다. 역시 '파스텔뮤직의 개구쟁이'라고 할 수 있는 불싸조다운 선택이라고 할까요?
2010년 세 번째 정규앨범이자 마지막 앨범 'Yield'를 파스텔뮤직을 통해 국내에도 발표한 'Arco'도 'I believe in Father Christmas'로 참여했습니다. 역시 Arco다운 간결함이 돋보이는 곡으로 원래 1975년에 발표되었고, Father Christmas는 영국에서 산타클로스를 부르는 말이라고 하네요. 마지막 곡에는 '짙은'을 필두로 파스텔뮤직 식구들이 참여하여 대미를 장식합니다. 바로 'John Lennon'과 'Ono Yoko'의 너무나도 유명한 'Happy X-mas(War is Over)'로 국내외 수 많은 가수들이 커버했던 곡이죠. 파스텔뮤직 버전에서는 합창을 통해 함께하는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노래처럼 세상의 모든 분쟁이 끝나고 언제나 크리스마스처럼 평화롭고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수 년을 기다려온 파스텔뮤직표 캐롤 앨범을 둘러보았습니다. 파스텔뮤직의 모든 식구들이 참여하지 않은 점이나 센스 넘치는 자작곡들로 채워지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눈 내리는 숲 속의 사막여우'처럼 어색하고 외로운 이들에게 따뜻한 선물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하네요. 언젠가 이 곡들을 따뜻한 공연장에서 들을 수 있는 크리스마스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11년 발매 예정인, 초호화 라인업을 자랑하는 또 다른 컴필레이션 'SAVe tHE AiR : GREEN CONCERT'를 기대하면서 마칩니다.
아름다운 혼돈 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Merry Lonel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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