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다림을 깨고 발표된 한희정의 솔로 데뷔 앨범 '너의 다큐멘트'.
'더더(3집, 4집)'와 '푸른새벽'의 히로인 '한희정'이 솔로 데뷔앨범이 드디어 발표되었습니다. 푸른새벽 시절처럼 많이 미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5월 즈음 예상은 7월 정도로(?) 약간의 연기만 있었을 뿐입니다. 더구나 '푸른새벽'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설정샷의 앨범 커버로 대다수를 차지하는 남성팬들의 지갑을 열게하고 있습니다.(얼마전에 새앨범을 발매한 섹시 아이콘 이효X양을 의식한 건 아닌가하는 의혹도...)
앨범 제목과 동일한 첫 곡 '너의 다큐멘트'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독특한 분의기입니다. 왠지 음험한 분위기는 유쾌한 호러물의 분위기이며, 어떤 면에서는 'MOT'의 느낌이 납니다. 곡 자체만으로는 짙은 안개 속을 헤쳐나가는 분위기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점만으로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하늘이 열리는 기분은 왜일까요?
두번째는 이미 홍대에서 보여주었던 공연을 통해 익숙히 들었던 기대곡(?) '브로콜리의 위험한 고백'입니다. 공연에서 엉뚱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던 소절 '우리 그만 헤어져~'를 들을 수 없어 좀 아쉽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곡은 좀 더 진지해졌습니다. -사실 공연에서 이 곡이 진지한 곡임에도 엉뚱한 목소리 덕분에 웃긴 곡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브로콜리를 통해 창백한 초록의 낯으로 이별을 말하는 '그'를 투영시킨 상황이 브로콜리가 벌떡 일어나 이야기하는 모습처럼 재밌지만, '그녀'의 사연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미 '12 Songs about you'를 통해 솔로 뮤지션 한희정을 '우리 처음 만난 날'은 밴드 버젼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처음 만난 날의 환희'를 한 편의 시처럼 담아낸 분위기는 '푸른새벽'까지 '한희정'에게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조금 쓸쓸한 느낌의 솔로 버젼이 색바랜 사진을 넘기는 분위기같이 훗날의 회상같았다면, 밴드 버젼은 생생한 기쁨을 담아낸 느낌입니다. 밴드의 연주도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를 가릴 수 없네요. 그만큼 그녀는 무대 위에서 뿐만 아니라, 고막을 통해서도 빛이 납니다.
'MOT'의 '이언'이 참여했고 기타 연주 위로 흐르는 'Drama'는 아마도 '푸른새벽' 속에서 그녀의 모습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는 낯선 곡들을 지나 가장 반가운 트랙이 아닐까 합니다. 공연에서 가증스럽게(?) 준비했던 멘트로는 이 곡은 '인생이란 뭐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것이 아니겠어요~'라는 기분으로 '드라마'라는 제목이 붙었다고 합니다. 곡이 끝날 무렵에는 이언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날들'은 아주 오래전 개인 홈페이지에 데모로 올라왔던 곡입니다. 그 즈음에 같이 들었던 '딩'이 이미 '푸른새벽' 2집에 실려서 버려졌나 했는데 아니었군요. 그때는 가사가 많이 달랐는데(아마도 사랑 노래), 이런 모습으로 솔로 앨범에서 만나게 되네요. 공연을 통해 너무 익숙해진 바로 앞의 세 곡과 함께 공연에서 들을 수 있던 곡으로, 공연에서는 세 곡보다 나중에 소개되었던 곡입니다. 곡 소개를 하던 날 '5 18 민주화 운동'을 노래하고 있다고 했었고 음반 소개에도 그렇네요.
'Re', 이 곡도 데모로 들었던 곡입니다. 그 때는 가사는 없었지만, 전혀 새로운 분위기에 어떤 곡이 될런지 궁금했었는데, 밴드 구성과 함께 찾아온 모습은 다시 들어도 낯설기만 합니다. 기타 리프는 불안하고, 보코더를 통해 들리는 코러스는 불길합니다. 어린 시절 남량특집 '전설의 고향'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잠든 후 꾼, 기묘한 꿈처럼 말이죠.
'산책'은 피아노 반주만 함께 해도 좋을 법한 곡입니다.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푸른새벽' 2집에 수록되었던 '오후가 지나는 거리'를 떠올리게 하네요. 열린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과 그 햇살 속에서 빛나는 먼지같이 소소한 느낌에서 두 곡이 닮아 있습니다.
'Glow'는 '한희정 밴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트랙입니다. 앨범에서 들려주는 밴드 포멧의 시도는 보컬이 너무 두드러져 존재감이 약하고, 'Re'에서는 연주와 보컬이 동떨어진 느낌이었는데 'Glow'는 그렇지 않습니다. 처절한 느낌의 연주와 차가움을 담고 있는 보컬은 비극의 엔딩 크레딧을 듣는 기분입니다.
너무나도 싱그러운 도입부 때문에 '휴가가 필요해'는 다분히 여름, 휴가 시즌을 겨냥해 만들었을 것이라는 의심들게 합니다. '나나니나나나나~'로 유명한 '포XX 스XX' 음료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쓰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싱그럽고 시원합니다. '우리 처음 만난 날'과 함께 그 '긍적적인 에너지'는, 그녀가 걸어온 디스코그라피와는 다른, 솔로 한희정의 차별화를 만들어주는 곡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이 열린다고 예상할 때, 시원한 옷차림(?)과 함께 무대에 등장하여 이 곡을 오프닝으로 한다면, 남심(男心)은 한여름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에 떠어진 하드바 마냥 녹아버리라 예상됩니다. 하지만 이 곡만의 '너무 튈 정도의' 발랄함은 앨범의 통일성에 금을 가게 하네요.
마지막 곡은 '나무'입니다. 1절의 흐릿한 키보드와 2절의 꾹꾹 누르는 피아노의 대비는 비장함을 고조시킵니다.
가사에 등장하는 '쉼표', 이 앨범이 그 '쉼표'가 될런지 아니면 쉼을 마친 새로운 시작이 될런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긴 비바람을 이겨내고 열매를 맺은 탐스러운 나무처럼, '한희정' 그녀도 그녀의 홀로서기를 멋진 첫 결과물로 비상을 시작합니다.
'너의 다큐멘트'라는 앨범 제목처럼 '한희정'의 솔로 앨범은 '너'에 대한 노래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너의 기록들에서 '나'는 빠질 수 없습니다. 기록의 주체로서 또 기억의 주인으로 '나'가 없이는 '너의 다큐멘트'는 만들어질 수 없의, 그 다큐멘트는 나에 대한 투영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그녀는 '너'를 통해 비취진 '내 이야기'를 하려지는도 모르겠습니다.
짙은 그림자를 남긴 '푸른새벽'호의 항해는 3장의 결과물로 끝이났지만 그녀의 홀로서기는 그 이상으로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요즈음처럼 공연도 자주자주 해서, 팬들과 좀 더 소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야 그녀에겐 '데뷔앨범'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아직 젊습니다.
'보옴이 오면'에서 너무나 먼 봄을 노래했던 그녀. 지금 그녀는 그 보옴을 만났을런지요?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아마도 그녀는 따뜻한 바람에게 봄의 소식을 듣지 않았을런지요. 별점은 4개입니다.(팬으로서는 4.5개, 0.5개는 완전 fan心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