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과 실력의 불협화음

명성과 실력은 언제나 비례할 수 있을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있을까?

최근 각종 TV 프로그램, 특히 흥미 위주의 프로그램에서 의사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 프로그램들에 자주 등장하는 의사들을 명의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TV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의사들 가운데, 의사들 사이에서 '명의'라고 인정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해야할까?

물론 의사들의 시기심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진짜 실력자라면 TV에 얼굴을 비추며 농담따먹기나 할 만큼 한가하지 않을 것이다.

진짜 실력자의 실력은 누가 대신할 수 없고 대신 진료도 할 수 없기에, 결국 그리 한가할 수도 없다.

다른 '전문가의 영역'에도 같은 관점을 적용해보자.

TV 프로그램에 많이 나오는 요리사가 진짜 실력이 뛰어난 요리사라고 할 수 있을까?

한 때 잘 나가던 '에드워드 권'의 레스토랑이 있던 한남동의 모 처에는 이제 다른 대세 셰프의 레스토랑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실력으로 유명세를 탔기에 '빈 수레'라고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그 유명세로 다른 분야에 얼굴을 내미는 순간, 그 '실력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셰프의 레시피가 표준화되어 그 맛을 누군가 대신할 수 있는 순간,

그 명성돠 인기도 역시 대신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더구나 변화와 흐름이 더 빠른 미각의 영역에서는, 명성의 부침과 대세의 교체도 더 빠르지 않을까?

언제나 정진하지 않으면 뒤쳐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전문가의 영역이 아닐지...?

...

내실있는 '고수'가 되느냐, 명성을 이용한 '사업가'가 되느냐...

어느 전문직이나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지.
2014/11/22 14:27 2014/11/22 14:27

보이후드(Boyhood) - 2014. 10. 25.

감독이름에 올라간 '리처드 링클레이터'라는 이름을 보고 눈치챘어야했다. 9년마다 한 편씩 찍어서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 삼부작'을 완성한 '장인 정신'이 투철한 감독이라는 점을. 사실 '현대카드 고메위크'로 예약한 런치와 디너 사이에서 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고, 상영작들 가운데서 시간도 맞고 상영시간도 꽤 긴 영화가 바로 '보이후드(Boyhood)'였다. 그리고 전문가 평점도 꽤 좋았고, 잔잔한 영화로 보인 점도 선택의 이유였다. '남자의 유년기와 소년기'를 뜻하는 '보이후드'라는 제목은 '소년적 감수성'을 건드렸고, '건전한 남성이라면 한 번 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Coldplay'의 익숙한 노래 'Yellow'로 시작하는 영화는 제목처럼 한 소년의 성장 과정을 그려낸다. 장르가 드라마이니 만큼 갈등이나 위기가 있기도 하지만, 상식적인 방향으로 진행되는, 비교적 잔잔한 영화다. 그 잔잔함으로 총 상영시간 165분을 이끌어가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6살짜리 소년 '메이슨'이 12년 동안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인데, 놀랍게도 그 12년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배우의 교체가 없다는 점이다. 성인도 아닌 아역 배우는 1년이 다르게 성장하기 마련인데, 배우의 교체가 없다는 점은 무슨 뜻일까? 그렇다. 감독과 배우들이 진짜 가족처럼 모여서 12년 동안 촬영을 했다는 뜻이다. 물론 12년 내내 촬영하지는 않았지만, 6세부터 18세까지 1년마다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을 '평범하게' 담은 영화는 '비범하게' 보이고, 작가의 '미칠 듯한' 장인 정신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소년의 12년은 현실의 시간과도 많이 비슷해서 영화의 엔딩은 작년 정도로 볼 수있다. 그 현실성만큼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중문화의 모습도 현실적이다. 메이슨의 누나 사만다는 2000년대 초의 미국 팝음악의 아이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를 부르고, 메이슨은  전세계적으로 성공한 일본의 만화이자 애니메이션인 '드래곤볼'을 보고 있다. 또 두 남매는 성장하면서 엄마가 잠자리에서 읽어주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듣고, 더 성장해서는 전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는 이 '해리포터 시리즈'의 발매 행사에도 참여하는 모습도 보인다. 게임기는 '닌텐도 게임보이'에서 '닌텐도 Wii'와 'X-box'로 변해가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배경음악도 연도에 비슷한 인기곡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의 막바지에는 너무나 유명한 'Gotye'의 노래 'Somebody that I used to know' 까지도 들을 수 있다. 어른들의 모습에서는 미국의 911 테러 이후 아프카니스탄 침공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따란 미국 중산층의 몰락도 보여진다. 매년 변하는 미국의 대중문화와 사회의 모습을 (고증이 아닌 실시간으로) 담아낸 점에서는 미국 중산층을 그려낸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도 느껴지고, 각본을 쓴 감독이 이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여 각본을 각색했을 지도 궁금해 진다.

소년의 성장과 떼어놓을 수 없는 가족의 변천사도 흥미롭다. 6살의 시작부터 주인공 메이슨의 부모는 이혼 상태이고 메이슨과 누나는 엄마와 살고, 아빠는 가끔 만나고 있다. 12년이 지나면서 엄마는 또 두 번 재혼하고 모두 아이 없이 이혼한다. 아빠는 뒤늦게 (메이슨이 13~14세 즈음에) 재혼하고 아이를 낳고 두 번째 결혼을 튼튼하게 유지한다. 이혼 상태로 시작한 영화는, 엄마와 아빠의 재혼을 통해 '미국식 가족'의 정형적인 단편을 보여주려 했을 수도 있겠다. 메이슨의 '첫번째 새아빠'도 '새엄마와 그녀의 가족들(조부모)'도, 혈연과 관계 없이 자녀들을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대하는 모습은, 우리의 정서에서는 꽤나 놀랍다. 혈연적 유대와는 관계 없이 '법적으로 모인 가족' 속에서의 결속은 꽤 단단하지만, 또 두 번을 더 이혼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그 가족도 유동적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혈연'으로만 판단하지 않는 점에서는 꽤 성숙하지만,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미숙하기도한 '미국식 가족'의 모습은 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남자는 단순한 동물'이라고도 한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한 성장 과정을 겪는 대부분의 소년은, 크게 어긋나지 않고 대부분 비슷하.기에 그런 말이 나왔을 수도 있겠다. 비교해보면 다들 비슷한 '단순한 과정'이지만, 그 단순한 과정 속에서 각 소년들이 겪는 감정의 변화와 성숙의 과정은 결코 단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메이슨도 마지막에는 어엿한 청년이 되지만 아직도 세상은 낯설고 어렵다. 아마도 세상 속에서 세상과 맞서 살아가는 모든 소년들도 그럴 것이다. 남자는 성숙하지 않고 그러는 척만 할 뿐이라는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남자는 언제나 소년이고, 모든 소년은 언제나 근본적으로 외롭다. (하지만 그 근본적 외로움과 호기심은 인류의 발전에 엄청난 공헌을 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소년기를 지나온 남자로서도, 또 소년(아들)을 키울 부모로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한 번은 볼 만한 영화가 아닐까? 별점은 4개다
2014/11/11 15:26 2014/11/11 1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