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을 깨고 일어나, 잠든 겨울을 깨우는 'Sentimental Scenery(센티멘탈 시너리)'의 스페셜 앨범 "There is nowhere else in the world".
"Harp Song & Sentimentalism"과 "Soundscape"로 서정적인 일렉트로니카를 들려주었던 '센티멘탈 시너리'가 전작들과는 조금 다른 스페셜 앨범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첫 두 앨범 사이에 2년 정도의 간격이 있었기에 Soundscape 이후 약 10개월만에 발매된 이 앨범은 센트멘탈 시너리의 음악을 기다려온 이들에게 깜짝 놀랄만한 겨울 선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따근따근하게 배송된 앨범을 받아들었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건 뭐니뭐니해도 역시 독특한 일러스트입니다. 지난 두 앨범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그래픽 아티스트인 Marumiyan'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화사했던 지난 두 앨범과는 다르게, 하얀 바탕 위로 그려진 섬세한 소묘와도 같은 검은 풍경은, '겨울'을 떠올리면서도 현실이 아닌 희미한 꿈 속에서나 보았을 법한 낯섬과 이질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렇기에 이 앨범의 제목이 우리말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즈음이 될 'There is nowhere else in the world'일 수도 있겠네요.
연주곡으로만 채워진 이 앨범을 여는 'November'는 제목에서부터 겨울의 시작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Olafur Arnald'의 곡이 떠오리기도 하는 피아노 연주와 서정적인 현악은 짧지만 겨울의 감성을 물씬 느끼게 합니다. 센티멘탈 시너리를 일렉트로닉 계열의 뮤지션으로만 알고 있는 팬들에게는 낯설 수 있겠지만 다른 예명으로 뉴에이지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던 그의 경력을 생각한다면,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나는 징조라고 할 수있겠습니다.
'November'가 뉴에이지였다면 이어지는 'View'는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포스트 락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피아노, 신디사이저, 일렉트로닉 기타 및 드럼 등 다채로운 악기로 꾸려가는 사운드는 북유럽 겨울의 숲을 담은 사진에서나 봤을 법한, 광활한 설원과 그 설원에 맞닿아 펼쳐진 눈 덮인 침엽수림의 광경(View)을 보는듯 합니다. 유명한 곡인 'First Noel'은 첫 곡과 마찬가지로 피아노 연주가 중심이되는 트랙으로 파스텔뮤직의 크리스마스 앨범 'Merry lonely Christmas & happ new year'로 이미 소개가 되었었죠.
'Beautiful Dream'는 분위기를 달리하여 상당히 진취적인 인상을 주는 곡입니다. 피아노 연주와 밴드 연주가 어우러진 소리는 기존 센티멘털 시너리의 곡들과 그나마 가까운 느낌이기도 하지만, 'Steve Barakatt'과 뮤지션들의 음악에서 들을 수있는 '크로스오버'적인 시도에 더욱 가깝습니다. 이 앨범 수록곡 가운데 가장 밝은 곡이기도 한데, 그런 점에서 '아름다운 꿈'은 로맨틱한 꿈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꿈'에 이어지는 곡은 공교롭게도 '무의식'을 뜻하는 'Unconscious'입니다. 배경음악으로 흐를 법한 어느 째즈곡처럼 조용하지만 오밀조밀하고 흐르는 진행은 수면주기 가운데 REM 수면기에 볼 수 있는 안구의 빠른 움직임(Rapid Eye Movement)처엄 느껴집니다.
'These Moments'부터 'Snowy Field'까지 일련의 곡들은 어느 영화 속 장면들의 배열같은 느낌을 줍니다. 멜로영화의 가장 중요한 한 장면 뒤로 흐를 법한 'These Moment'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합니다. 벚꽃이 흩날리던 어느날 헤어진 옛연인은 수 년이지나, 그 길위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됩니다.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여 걸으며 스쳐가지는 그 순간, 그날의 벚꽃 대신 눈이 내리고 담담한 애절함으로 두 사람을 감싸고, 찬란했던 시간들은 두 사람만의 기억 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 애절함은 아롱아롱 눈물이 되고 또 다른 두 사람만의 기억이 됩니다. 언제쯤 '이 순간들'은 끝이 날까요? 또 언제쯤 '이 순간들'이 다시 찾아올까요? 듣고 있노라면 감상적이면서도 정적인 상상과 의문을 갖게 됩니다.
장면을 바꾸어 '9 Hours'는 막연히 떠나는 '9시간의 운전'과 같은 곡입니다. 지평선과 맞닿아 한없이 이어지는 길과 창밖으로 스쳐가는 적막한 풍경들,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White Out'은 기억을 찾아 무작정 떠난 여행의 끝에서 반겨주는 세상을 하얗게 덮는 눈과 같은 적막한 기쁨이라면, 'Snowy Field'는 그 눈발이 지나간 후 펼쳐진 설원의 신비함을 맑고 투명하게 그려냅니다.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은 반어적으로 시작의 이미지와 닿아있는 제목의 'Genesis'입니다. 6분이 넘는 곡으로 'View'처럼 포스트 락의 색채가 짙은 곡인데, 피아노와 밴드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어우려저 만들어내는 소리는, 밤하늘을 수놓은 수 많은 별들과 그 별들이 펼쳐져있는 우주를 보는듯한, 찬란하고 장엄한 풍광을 만나게 합니다. 또 이 앨범은 이 곡으로 끝이지만 아직 젊은 센티멘탈 시너리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또 다른 행보를 암시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겨울을 위한 이미지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There is nowhere else in the world", 제목 그대로 세상 다른 어떤 곳에서도 들을 수 없는, 센티멘탈 시너리가 미쳐 펼쳐내지 못했던 매력 혹은 마력이 담긴 앨범이자 센티멘탈 시너리가 추구하는 음악의 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지금까지 들려주지 못했던 곡들을 담은 소품집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Sentimental Scenery라는 껍질에 가려져 들을 수 없었던 그의 이야기들이 이제 그 껍질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려는 징조일까요? 그리고 저에게는 끝과 새로운 시작이 교차하는 겨울의 끝을 함께했던 앨범이기에 더 마음에 와닿습니다. 당연히도 일렉트로니카가 아닌 다른 장르로도 왕성한 그의 활동을 기대할 수 밖에 없네요. 별점은 4.5개입니다.
아름다운 혼돈 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Sentimental Scenery - There is nowhere else in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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