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우려 속에 발표된 '브로콜리 너마저'의 두 번째 정규앨범 '졸업'.
'앵콜요청금지'를 비롯한 청승맞은 가요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브로콜리 너마저'의 두 번째 정규앨범 '졸업'이 발매되었습니다. 첫 앨범 '보편적인 노래'가 발매된 후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에는 신변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선 목소리로 '브로콜리 너마저표 노래'의 '얼굴마담'이라고 할 수 있었던 메인보컬 계피가 탈퇴했다는 점입니다. 음악적 견해 차이로 탈퇴했다고 하는데, 그 후 그녀는 '우쿨렐레 피크닉'과 '가을방학'을 통해 꾸준한 음악활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다른 변화는 소속사와 결별하고 자체 레이블 '스튜디오 브로콜리'를 설립했다는 점입니다. 2008년 '보편적인 노래' 발매 이후 일련의 사건들은 브로콜리 너마저의 해체에 대한 우려까지 들 정도였지만, 2009년 두 장의 데모를 발표하고 건재를 확인시켰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앨범으로 팬들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자정을 갓넘긴 이른 새벽 시간인 '열두시 반'으로 앨범은 시작합니다. 마지막 트랙의 제목이 '다섯시 반'인 점을 보면 이 앨범은 새벽의 약 5시간 동안 벌어지는 짧고도 긴 이야기가 되리라는 예감이 듭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피곤한 길에서 길을 잃어버린 모습은 우리들의 쉽지않은 일상의 이야기이면서, 또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아직도 자기만의 길을 찾지 못한, 길을 잃고 지쳐버린 우리 모두의 모습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계피를 대신해서 목소리를 들려주는 '류지'는 계피보다 더 불안하지만, 새벽 열두시 반에 지친 목소리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기타의 몽환적인 연주도 피곤하고 몽롱한 기분을 그려냅니다.
'사랑한다는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이라는 긴 제목의 두 번째 트랙은 이번 앨범에서 보여주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변화를 알리는 서막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번 앨범에서 메인보컬로 자리잡은 '덕원'의 목소리와 모던락의 성향이 그렇습니다. 뼈에 사무칠 듯한 외로움을 노래하는 가사는, 현실의 험난함과 사랑과 외로움을 노래한 점에서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를 떠오르게 합니다.
'변두리 소년, 소녀'는 그런 변화들을 이어가는 트랙입니다. 시골의 소년, 소녀 혹은 소외된 소년, 소년의 이야기를 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혹은 어느 글에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입니다. 혹시 '황순원' 작가의 소설 '소나기'가 떠오르지는 않나요? 소설 속세엇 다 들을 수 없었던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색다른 시각에서 환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는 이미 수 차례의 공연과 데모로 공개되어 주목받았던 트랙입니다. 제목이 독특한데, 리더 덕원을 비롯한 멤버들의 대학교 강의의 제목이라네요. 제목 그대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과 소통의 불일치에 대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컬의 아쉬움이 두드려집니다. 메인보컬이지만 안정적이지는 못했던 계피의 탈퇴 후, 더욱 불안해진 보컬은 브로컬리 너마저의 최대 약점이었습니다. 이 곡의 라이브에서 덕원의 보컬은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보컬을 필요하는 곡들을 쓰는 밴드가 아니기에 들을 만했죠. 하지만 녹음된 결과물에서 덕원의 보컬은 잘 부르려는 흔적이 오히려 귀를 거슬리게 합니다. 과유불급이라고 할까요? 잘 부르려는 노력은 좋지만, 오히려 어색하고, 목소리의 흐름은 '오토튠' 사용의 의혹까지 강하게 들리고 있습니다. 다른 트랙들과는 다른 부자연스러운 목소리의 흐름, 목소리의 변두리를 가공한 느낌은 상당히 귀를 거슬리게 합니다.
'울지마'와 '마음의 문제'는 앞선 '커뮤니케이션의 이해'에 이어 '소통'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던락 넘버들입니다. '이젠 안녕'은 데모로 공개되었던 트랙으로, 밴드를 떠난 누군가를 향해 들려주는 이야같은 느낌이 듭니다. '할머니'는 뭔가 진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지만, 사실 할머니의 장수에 대한 욕심을 엄살스럽게 표현하는 모습과 덕원의 '할머니 성대모사'가 재미있는 트랙입니다.
'환절기'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곡들 가운데 가장 무거운 사운드의 트랙입니다. 멤버들이 함께부른 보컬은 낮게 가라앉습니다. 수록곡들의 연주가 전체적으로 가벼운 모던락이나 팝락 분위기인데 반해, 이 곡의 무거운 연주는 좀 더 하드한 락들에 가깝습니다. 계절에 변화에 따른 사랑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노래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브로콜리 너마저는 이런 계절의 변화를 좀 더 다른 의미로 해석해내고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나눈 계절, 그 계절과 계절 사이, 경계와 경계 사이 존재하는 또 다른 시간 환절기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그 기간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과 마음, 생각과 생각, 이념과 이념들...그 사이에 존재하는 '나'를 노래하는 이 곡에서 어쩐지 'W'의 '경계인'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앞선 '환절기'에서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환절기'로 표현했다면, '졸업'은 그 경계의 끝을 '졸업'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환절기가 대학시절 정도라면 그 모호한 경계의 끝은 '대학교 졸업'이라고 할까요? '미친 세상에'라고 노래하듯, '짝짓기'나 '팔려가는'같은 살냄내새 나는 단어들의 선택은 현실에 냉소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않는 모습은 어른이 되었지만, 조금은 더 순순했던 시절을 잊지말자는 약속이 담겨져 있습니다. 끝이자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졸업', 이 밴드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곡이라 의심이 들어서 조금은 쓸쓸하기도 합니다. (015B의 명곡 '이젠 안녕'을 염두하여 쓴 곡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마지막 트랙은 수미상관을 이루는 '다섯시 반'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앞둔 청년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어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약 5시간 동안에 스쳐가는 짧지만 긴 이야기들,그런 지난 세상의 아픔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는 청춘을 위해 따뜻한 위로가 됩니다. 눈을 떠보면 찾아와 있을 새로운 세상을 위한 용기가 됩니다. (CD에서 들을 수 있는 히든 트랙은 '다섯시 반'의 에필로그와 같은 트랙입니다. 라이브의 느낌이 졸업식의 마지막 합창 같습니다.)
EP '앵콜요청금지'와 첫 앨범 '보편적인 노래'에서 '청승맞은 가요'로 듣는이의 공감을 얻었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가요보다는 모던락 성향이 강한 트랙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전작의 앨범 제목과도 같은 수록곡 '보편적인 노래'에서부터 감지되었던 변화는 이번 앨범에서 뚜렷해집니다.(어쩌면 계피와의 결별을 염두해두었다고 생각될 정도로요.) 결과적으로 기존 '브로콜리 너마저'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새로운 '브로콜리 너마저'를 만나게 됩니다. 브로콜리 너마저다운 재치와 감수성은 여전히 가사에 녹아있지만, 새로운 사운드와 불안한 보컬은 아쉽기만 합니다. 끝과 시작을 연결하는 경계선 '졸업', 브로콜리 너마저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마지막일까요? 아니면 '브로콜리 너마저표 음악'의 마지막이 될까요? 별점은 3.5개입니다.
2010/12/01 00:12
2010/12/01 0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