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여만에 재발매되는 'Arco'의 데뷔앨범 'coming to terms'.
4년 전에는 몰랐지만, 모 드라마와 모 CF를 덕분에 'Arco'를 알게되었고 때마침 재발매되었다. 'coming to terms', 우리말로 '타협하기, 체념하고 받아들기'정도로 해석된다. 얼핏보면 화사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쓸쓸함이 묻어나는 새로운 디지팩과 함께.
체념에 대한 단어들. 밴드 'Arco'는 'Speak'로 그 끝이 없을 이야기를 시작한다. 앨범 제목처럼 첫곡부터 쓸쓸의한 정서는 가득하다. 고개를 숙이고 읊조리는, 적막한 방 안 가라앉는 먼지같은 단어들.
독특한 제목의 'Alien'. 이별의 기분을 Alien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표현한 곡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여자'처럼 두 사람은 어쩌면 사랑의 순간에 '같은 종족' 흉내를 냈을 뿐일까? 미지의 조우를 마치고 고향별로 돌아가는 외계인처럼. 76년마다 태양계를 한 바퀴 돈다는 '핼리혜성'처럼, 관계란 대부분의 사람에게 일생에 단 한번 찾아오는 기회일까? 어떤 사람들에게는 두 번의 기회가 있겠지만, 한 번의 기회는 너무 일렀거나, 아니면 너무 늦었을테니. 후렴구의 공허함은 우주에 홀로 남겨진 느낌을, 무중력 속에 떠가는 눈물처럼 아리게 그려낸다.
제목과 가사처럼 평온한 밤의 비행을 머릿속에 그려내는 'flight'. 체념은 달관과 닿아있고 그 달관이 마음에 평온을 선사하는 것일까? 마지막 비행과 함께 지구를 떠난 작가 '생텍쥐페리'처럼. 비행이 인간이 결코 인간이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하늘에 대한 헛된 욕망이라면 화자의 바람도 결국 그런 것이 아닐지. 'Driving at night'의 마지막 가사처럼.
계절의 변화와 마음에 찾아오는 그 차가운 것을 적절하게 비유한 'Babies' Eyes'. '아기의 눈'이라는 제목은 세상에 오염되지 않은 아기들에 대한 부러움을 대변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 천진난만함과는 대조적으로 화자는 세상에 눈뜨게 될 'Accident'를 기다리고 있다.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어떤 '사고', 하지만 굳이 기다리기만 하는지? 찾아갈 수는 없을까?
삶에 대한 자조적 색깔이 뭍어나는 'Movie', 격정적인 후렴구가 인상적인 'Grey', 우울 그대로의, 'into blue'. 삶은 어쨌든 되돌려볼 수 없는 한 편의 '영화'와 같고, 결국에 그 빛은 점점 바래서 '잿빛'이 되고, 결국에 남는 것은 고즈넉한 혼자만의 '우울' 뿐이니.
빛바랜 기억을 더듬는 느낌의 'All this world'. 고요와 정적, 그리고 모두 멈춰버린 찰나의 세상. 결국 닳을 수 없음을 알았을 때의 싸늘한 허망과 영혼의 부분을 잃어버린 절망. 그리고 마지막 차가운 세상에 상처만 받았을지라도 꿈 속에서는 평온하기를 'Lullaby'.
비오는 날의 한적한 거리처럼, 우울하고 차분한 앨범 'Coming to terms'. 시종일관한 그 가라앉음은 조금은 지루하고 듣는 이를 우울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나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밴드가 의도한 앨범의 색이라면 '대단한 성공'이 아닐까? 'Arco'는 이탈리아어로 '현악기의 활'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밴드 'Arco'는 청자의 심금(心琴)을 울리는 활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별점은 4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