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조용히 발매된 '지은'의 데뷔앨범.
그녀의 목소리는 달랑 기타만 들고 노래하는 솔로 뮤지션에게는 너무 화려합니다. 또 그녀의 가사는 온통 사랑 이야기뿐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은 뭔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당신이 필요해요', 첫곡부터 지은의 보컬리스트로서의 기교와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뒤에 heart-beat mix라는 꼬리가 붙어있는데, 배경음으로 심장 박동음을 들을 수 있죠. 이 심장 박동수가 빨랐다면 노래에 긴장감을 부여했겠지만, 거의 정상적인 심장 박동수는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그 편안함때문인지 완급이 뚜렸한 그녀의 노래에서도 편안함이 느껴지네요.
'華', '빛날 화'라는 한문 제목의 곡으로 제목처럼 그녀의 보컬뿐만아니라 작사, 작곡 능력도 빛나는 곡입니다. 그녀를 주목하게한 곡이기도 하구요. 앨범 작업을 통해 밴드가 아닌 피아노 반주와 함께 하면서 데모의 거친(?) 매력은 줄었지만, 그녀의 보컬은 더 격정적인 빛을 발하네요. '널 갈아먹고 싶어'같은 충격적인 가사는 사랑과 증오(저주)는 그 '광기(狂氣)'에서 닮은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하네요. 어떤 말로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전하기 힘든가 봅니다. 역시 사랑은 머리가 아닌, 가슴이 하는 일인 걸까요?
'Love song', 지은의 노래가 대부분 사랑 노래기는 하지만 참으로 '노골적'이면서도 단순명쾌한 제목입니다. 하지만 또 마땅히 다른 제목이 어울릴 법하지도 않네요.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보았던 시(詩), '가난한 사랑의 노래'의 느낌도 납니다. 조용히 읋조리는 지은의 노래는 바람마저 숨을 죽인 고요한 겨울밤, 소리없이 내리는 눈 속을 홀로 걷는 이의 오롯한 뒷모습같네요. 조금 처량하고 슬픈 그 뒷 모습에는 체념과 초탈이 공존할 것만 같습니다.
'부끄러워', 사랑을 단계 중 첫단계에 해당할 법한 곡입니다. (소설의 네 단계에 빗댄다면, 앞선 세곡은 각각 '전개-당신이 필요해', '절정-花', '결말-Love song'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가슴을 떨리게 하는 건, 먼 발치에서 훔쳐보는 뒷모습이 아닌 모니터를 통해 훔쳐보는 미니홈피가 된 요즘 세대의 감성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후렴구의 가사와 오르골을 연상시키는 소리는 그 떨림도 지난 추억이 되어 한 방울의 눈물과 그보다 더 큰 위로가 되었음을 느끼게합니다.
'24', 아마도 앨범 수록곡 중 가장 강한 곡입니다. 도입부의 강렬한 느낌때문에 이 곡이 앨범의 첫곡이 되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길', 지인의 부탁으로 배경음악으로 쓰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연이 있습니다. 보컬의 기교도 절제되었고 곡의 완곡도 적은 '평온한 길'같은 곡이지만, 그런 점에서 또 다른 지은의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곡을 시작으로 후반부의 트랙들을 표현하는 단어는 '편안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냥 그런 거예요', 친구의 연애 이야기를 노래로 만든 곡이랍니다. 퍼커션 연주가 재밌고 온통 직설적 가사가 난무하는 요즘 가요들로 오염된 귀를 정화시킬 만큼 가사도 파릇파릇 신선합니다.
'사계', 째즈풍의 곡으로 어느 째즈바에서 피아노 연주와 함께 멋드러지게 노래하는 지은을 연상하게 합니다.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 소소한 일기같은 노래지만 소소함을 넘어선 감동을 줍니다. 듣다보면 점점 더워지는 요즘같은 밤, 그리운 이와 함께 걷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젊음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또 이 곡에서 젊음과 함께 느껴지는 '완숙함'이 놀랍습니다.
'the end of love affair', '사랑의 끝', 그 끝의 이야기이지만 단지 슬프기만하지는 않습니다. 햇살처럼 쏟아지는 지난 기억들... 밝은 날의 우수랄까요? 아름다운 4월의 봄날과 이별은 어울리지 않을 듯하지만 잘 어울립니다. 이어지는 'wind blows'와 한 짝같은 곡입니다.
'wind blows', 제목처럼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같은 곡입니다. 바람처럼 지나가는 시간, 바람처럼 스치는 이야기들, 그 가운데 있었던 두 사람, 그리고 가끔 비틀거리게 만드는 기억... 시나브로 밝아오는 새벽같은 이별의 아픔이 절절히 느껴지네요. 여성 보컬과 피아노 연주의 조합은 역시 사기스럽습니다. 물론 그 이상으로 곡도 좋지만요.
'작은 방', 앨범의 'outro'같은 곡으로 2분대의 짧은 곡이기에 '이야기의 마지막 한 줄과 마침표'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녀의 일기장은 여기서 끝입니다.
그럴듯한 레이블도 없이 탄생된 그녀의 첫번째 앨범은 평균 이상의 곡들로 채워진, 기대 이상의 앨범이 되었습니다. '레이블도 없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 앨범이 탄생하기까지 레이블보다 더 큰 많은 사람들의 협력이 있었지요. 그렇게 앨범 제작전 선주문의 형식으로 시작된 모금과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기연(?)으로 탄생하게된 앨범을 통해 지은은 '크게 한 걸음' 내딛었을 뿐입니다. 더욱 성장할 그녀의 행보를 지켜봅시다. 별점은 4개입니다.
아름다운 혼돈 내 20대의 비망록... live long and prosper!
지은 -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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